어제는 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사랑의 단상_ 롤랑 바르트

by 김설

어제는 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샐러드 식당에 앉아 입속으로 상추를 욱여넣으면서, 배꼽티를 입고 당당하게 걷는 젊은 여자를 보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웃는 여자와 그 웃음을 보고 바보처럼 웃는 남자를 보면서도 딸 생각이 났다. 도시의 활기와 청계천의 느긋함을 즐기면서도 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진동할 때마다 혹시나 했지만, 딸이 아니었다. 카톡 알림음도 딸의 연락이 아니었다.

'엄마, 뭐해?'라는 메시지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내가 먼저 보내지는 않았다.

28년 넘게 엄마로 살면서 하루도 안부를 묻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듯 하던 인사 '잘 잤어?'부터 시작해서, 저녁 무렵의 '뭐 먹었어?'까지. 그런데 이제는 부러 참는다. 참는다는 표현도 웃기다. 딸한테 연락하는 걸 '참는다'니. 마치 금연하는 사람처럼.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게 놀라웠다. 언젠가 잠수를 배울 때 생각이 났다, 수영장에서처럼 조금씩 익숙해지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느낌이다. 딸이 자신만의 세상에서 웃고,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연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연락하지 않는다.

아이를 잘 키웠다는 증거는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성장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게 자연의 섭리라지만, 섭리가 항상 달콤하지는 않다.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건너편에 혼자 앉은 여자를 본다. 저 여자도 딸이 있을까. 꽉 쥔 주먹을 슬그머니 펴 본다. 손을 펴야 아이도 자유롭고 나도 자유롭다. 그런데 이 자유가 왜 이렇게 무겁지?

부모 없이 사는 법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딸은 스스로 터득했다. 내가 아이를 키운 건지, 아이가 나를 키운 건지. 집은 항상 조용하고 고양이만 나를 반긴다. 추억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고, 그리움이라고 하기엔 따뜻한 무언가가 거실을 둥둥 떠다니다가 먼지처럼 소파에 앉는다.

상대방이 없어도 존재하는 사랑. 성공적인 이별이라고 말하지는 못 하겠다. 많이 연락하면 잔소리꾼, 안 하면 무관심한 엄마의 딜레마는 아직도 유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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