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복종은 굴종인가, 혹은 인간 본성의 일부인가?

미셸 우엘벡 | 복종

by 김설

미셸 우엘벡의 소설 "복종"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는 작품이다.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철학적 고찰이 담겨 있어서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어려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든 소설일 수도 있다. 디스토피아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22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정치·종교·사회 변화 속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에 복종하는 존재인지 묻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주인공 프랑수아는 대학교수다. 그는 중년의 무력감에 시달리고 자신만 느끼는 고립 속에 살면서 공허함을 체감하는 중이다. 설상가상 학생들과의 단절도 심각한 상태다. 그러던 중, 프랑스 대선에서 이슬람 형제단이 집권하면서 사회는 급격히 재편집된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제한되고, 대학은 이슬람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남성 교수에게는 다처제가 허용된다. 난데없는 체제 변화 속에서 프랑수아는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린다. 그리고 결국 ‘복종’을 택하는 순간에 이른다. 단순히 정치적 권력에 굴복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고 안정과 소속감, 나아가 삶의 무의미를 덮어줄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보인다.

이야기의 흐름은 단순하다. 그러나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어떤 것에 복종하는가' 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에 집중하게 만든다. 읽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정치 상황과 어두운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하지만 작가의 진짜 관심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현대인의 공허한 삶 속에서 ‘복종’이라는 선택이 어떻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책은 제목은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다. 우엘벡은 결국, 복종이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어떻게 결정짓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종이라는 주제는 여러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내가 어떤 권력에 복종할 때, 그것이 선택인지 강제인지, 그리고 그 선택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우리가 보통 복종이라고 하면 외적인 강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약간은 굴욕적인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내부의 갈등과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줄거리를 통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우엘벡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 복잡한 주제를 풀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다. 그 과정에서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복종"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차가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진지한 쪽으로 나의 생각을 유도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 속는 기분이 든다.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척하다가 결국 개인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고찰로 귀결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읽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많아진다.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 한 번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는 성가신 작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 들여다보는 게 왜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