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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Sep 20. 2020

필통 예찬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삥을 뜯긴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내가 삥을 뜯겼다는 사실을 몰랐다. 게다가 삥을 뜯다 라는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고 설사 내가 방금 당한 일이 삥을 뜯기는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열 살짜리 아이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서울 한복판 아빠가 운영하시던 회사에서 불과 2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대로변에서 멀쩡하게 선 채 어른에게 오천 원을 빼앗겼다. 1980년도의 5000원의 가치를 검색해보니 버스비가 100원이고 소줏값이 200원, 짜장면이 500원. 서울의 아파트 한 채가 1200만 원이었다고 한다. 내가 살아온 시절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물가였다. 가만 보니 아빠가 10살짜리 딸에게 쥐여준 5000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네. 우리 아빠가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었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다시 삥을 뜯긴 상황으로 돌아가자. 새 학기에 이미 새로운 필통을 샀기 때문에 학기 중에  필통을 또 사달라고 조르는 건 어린 내가 생각해도 염치가 없었던 모양인지 선뜻 사달라는 말을 못 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만 했다. 사달라고 할까 말까를 고민한 건 아니고 오늘 말하면 좋을지 내일 말하면 좋을지를 끝없이 재고 있었다. 아빠가 일하시는 회사에 가서 정신없이 바쁜 틈을 타 말을 하면 별다른 꾸지람 없이 사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예상했던 대로 아빠! 사고 싶은 필통이 있어요. 그게 어떻게 생긴 거냐면… 하고 이제 막 사고 싶은 필통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바로 돈을 주셨다. 눈앞에 어른거리던 필통을 드디어 내 가방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40년도 지난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콧노래라도 부르지 않았을까. 누가 보더라도. 지나가는 코흘리개가 봐도 저 누나 손에 지폐가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고도 남을, 하늘로 날아갈 듯한 몸짓이었겠지. 













어떤 남자 어른이 문방구로 뛰어가는 내 손을 가리키며 “얘 너 손에 있던 돈 떨어졌지?” 하고 말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은 척하며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나쁜 아저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너 분명히 돈 떨어졌어.”“손바닥 펴봐!”그다음엔 짐작하는 대로다. 번개같이 재빠른 속도로 손바닥에 올려져 있던 내 피 같은 돈 5000원을 낚아채 전력 질주로 달아나 버렸다.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인식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던 거로 기억난다. 당시엔 눈물도 안 났으니까. 아빠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야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도둑을 만난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꿈에 그리던 필통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울었을 것이다. 10살짜리 꼬마의 돈을 훔쳐가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쁜 놈이다. 내가 그 필통을 다시 샀을까. 물론 다시 샀다. 사고야 말았다. 필통에 대한 애착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정도였다면 필통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쓰고 앉아있겠나.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새 필통을 사야만 직성이 풀렸다. 당신에 유행하던 필통은 주로 자석 필통이었다. 앞면만 열리는 필통이 유행하다가 앞 뒷면이 모두 열리는 필통이 나왔다. 내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필통은 지우개를 넣는 자리까지 따로 만든 필통이었다. 자석이 달린 문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만큼 비쌌다. 충분히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늘 새로운 필통을 탐냈다. 필통만큼은 조금 더 특별한 것을 찾았다. 요즘도 처음 가는 동네를 여행할 때면 맛집보다는 문구점을 먼저 검색한다. 필통이라는 사물에 관념이 스며 있다면 필통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갖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지 않을까.     

필통은 쓸모가 있는 물건이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다. 필통은 나에게 쓸 데 있는 쾌락을 선사한다. 실용적이어서 결코 단념할 수 없다. 좋은 필통을 갖고 있으면 남이 보기에 꽤 지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모션으로 아주 천천히 필통을 열어 펜 하나를 꺼내노라면 무엇이라도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착각이 든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지 못했고 장래희망이 수십 번 바뀌었지만, 그 안에 한 번이라도 작가라는 직업을 대입시킨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 싫은지는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 중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만 골라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아름답지 않은 색의 부조화와 싸구려 재질의 물건들. 조악한 디자인의 사물을 해체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돈을 버는 일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어렵사리 길러진 감각은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필통을 고르는데 쓰이고 있다.










필통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문구점을 서성이면 뒤따라온 남편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또 사?” 집에 많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또 사?” 두 번째로 싫어하는 말이 “집에 많잖아.”다. 가급적이면 문구점에는 혼자 간다. 마음껏 둘러보고 실컷 구경하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통은 집에 있다고 해서 안 사는 물건이 아니다. 아주 가끔은 너무 좋은 것을 찾는 사이 이미 내가 가진 좋은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나면 내가 가진 필통을 하나씩 꺼내 다시 들여다본다. 똑같이 필통이라고 불리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다르다. 재질이 비슷한가 싶으면 그것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다르다. 필통을 사던 때의 마음이 되살아나면 그것은 그저 단순한 문구가 아니게 된다. 

책을 냈고 또 한 권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있고 계속 친해지고 싶은 편집자가 있고 책을 내고 싶은 출판사 리스트가 늘어나고 작가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불러주는 동료가 있는 삶이 올 거라는 짐작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들락거린 문구점에서 새로운 필통을 하나씩 사면서 필통을 채울 펜을 샀고 그것으로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했다. 오랫동안 필통을 사다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 봐라. 필통은 쓸모가 아주 많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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