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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Aug 30. 2020

박태환이 되고 싶은 사람들







거의 25 만에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출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배우기 시작했고 8개월 동안  가지 영법을  배우고  달을 쉬었다가 아이를 낳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내가 언제 꾸준히 수영장을 다녔겠는가. 아무튼  가지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어떤 반으로 합류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어떤 반도 사실 무리였다. 초급반이라고 하기엔 그럭저럭 수영을   알고 중급반이라고 하기엔 수영을 그만둔  너무 오래됐다. 상급반을 다니는  더욱 불가능하다. 상급반에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수영 실력을 보면 상급반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하면서 기분 나빠할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고민거리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었다. 성격상 혼자 하는 운동을 편안해하는 편이라 수영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동네 수영장이라는 곳의 분위기가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분위기다. 아줌마들이 주로 수업을 하는 시간인 오전 9시에서 12 사이의 수업은 친목 단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 친하게 지낸다. 처음에 들어가면 누구나 왕따로 지내게 된다. 붙임성이 타고나게 좋으면 그럴 일도 없지만 낯가림이 심한 나는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편이다. 그렇게 혼자 수영하다가 힘이 들면 알아서 쉬고 어느 정도 운동량을 채우면 샤워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사람으로 지내는 것이  스타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자발적 왕타를 타의적 왕따로 착각한 언니들이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아이고 고맙습니다." "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고 관심을 주시다니 한한 영광입니다." 하는 자세로 최대한 겸손하게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해야 다시 왕따가 되지 않는다. 행여 시큰둥해 보이면 그때부터는 진짜로 왕따가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자발적 왕따지 타의적 왕따는 아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가장 착하게 빙구 웃음을 짓는다. 그다음부터는 피곤한 수영장 생활이 시작된다. 강습이 끝나고 같이  먹으러 가지 않으면 언니들에게 혼이 나고 단체 행동에 조금이라도 끼어들지 않는다 싶으면  혼이 난다. 주로 혼내는 담당 언니가 계신다. 25 전엔 임신 중이라는 핑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체할 만한 핑계도 없으니 중급반에 들어갈  아니라 자유 수영을 하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유 수영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수영 아닌가.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각자가 자신의 속도대로  레인을 오가면 그뿐인 까다로운 규칙이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천만의 말씀이었다. 처음 자유 수영을 하는 날 나는 여러 언니들에게 혼쭐이 났다. 자유 수영 시간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물에 들어가서  50미터를 돌고 잠시 멈췄을 때였다.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는 것의 본질을 나는 알았어야 했다. 그야말로 고수들의 실력 자랑 시간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스승이 필요 없는 사람들. 계룡산 같은 곳에서 수련 과정을 모두 끝내고 하산을 앞두고 있는 도사들이다.


50미터를 돌고 쉬려고 서있던 자리는 고수들이 빠른 속도로 오다가 턴을 하는 자리였다. 멋지게 턴 하는 고수들의 동선에 본의 아니게 내가 방해가 된 것이다. 수영 선수들처럼 턴을 한 뒤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돌아야 하는데 덩치가 작지도 않은 내가 멀대처럼 서있으니까 언니들은 턴을 할 때마다 욕을 한 마디씩 했다.


"아이씨!!"

"아 진짜!!"

"비켜!!"


언니들이 오는 방향을 피해 재빨리 왼쪽으로 비켰다가 욕 한마디 듣고는 냉큼 오른쪽으로 비켰다. 이렇게 눈치를 보다가는 정해진 시간 안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악물고 출발해 보지만 그래 봤자 고수 언니에게 금세 따라 잡히거나 부딪혀서 또 욕을 먹었다. 잊어버린 영법을 점검하겠다는 처음의 계획 같은 건 아랑곳없이 그저 되는대로 해보자고 애를 쓰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안 먹던 물을 먹는 일도 생겼다. 할 수 없이 레인을 바꿨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 보이는 곳으로 갔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긴 고수의 고수가 사지를 마음껏 펼치고 버터플라이를 하고 있었다. 고수들을 피하고 피해 가장 한가한 레인으로 옮겨가니 물이 허리까지 오는 어린이들을 위한 레인이었다. 그곳에 서서 가만히 생각했다. 올림픽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다들 왜 이렇게 기를 쓰고 속도를 내는 건가? 나는 왜 어린이 전용 레인에 와서 뻘쭘하게 서있는 건가. 이유는 모두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사실은 고수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앞사람의 속도를 맞춤으로서 평균치를 유지하려는 마음. 우리는 동네 수영장에서 조차도 평균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걸 용인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졌다.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수영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모두 망각한 채 오직 속도로 경쟁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듯하다. 뭐에 홀린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른 속도로 수영하는 사람들 틈에 도저히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나는 굳은 몸과 삐걱거리는 관절이 부드러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취미로 수영을 한다. 혹시 모를 성인병도 예방하고 코어의 힘도 조금 늘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속을 천천히 유영하면서 가벼워지는 몸을 느끼고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을 것이다. 그 속도로 맞춰 살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스스로의 행복을 무시하고 남의 속도로 맞춰 산다면 자신에게 지나치게 매정하게 구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이 백 미터를 몇 초에 끊는 사람이라는 자랑 거리를 만들기 위해 수영을 하는 건가. 모두가 박태환이 되고 싶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평균은 누가 정한 것인가. 속도만을 위해 살아가는 일은 이제 좀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과정을 인정해주는 사회는 영영 오지 않는 걸까.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까 내 앞에 끼어 드세요 하고 자리를 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부터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나저나 나는 앞으로 어디서 자유 수영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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