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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Oct 20. 2020

비우고 채운다

           










온종일 사람을 만나고 만나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전화 통화라도 하는 것이 25년 동안 해왔던 나의 일이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한나절 동안 엄마를 기다렸을 어린 딸에게 철벽을 치듯 ‘엄마는 지금 아무 말도 하기 싫어’ 하고 말했을 정도다. 텔레비전을 완전히 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뒤엉키게 하고 반복되는 요란한 광고는 신경에 사포질하는 것 같다. 낮에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더라도 밤의 고요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수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였다. 예정에 없던 전화가 오는 것이 싫다. 그래서 집 전화는 집에서 사라졌다. 휴대전화에도 조용히 저항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일과 가족들, 이웃이 5503명인 블로그와 팔로워가 1200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그리고 글쓰기 플랫폼의 구독자 338명의 존재, 그 외에 다른 이유로 한순간도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어쨌거나 밤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뭔가 불길한 소식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무음으로 만들어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이다. 밤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 때문에 전화가 오면 불쾌하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럴 때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놓겠지만 전원을 끈 휴대전화는 더 이상 휴대전화가 아니라는 핑계로 잠시도 꺼놓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종의 근원적인 환각에 사로잡혀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친구가 없이 홀로 있는 것처럼 끔찍한 일은 없다는 듯이, 별것도 아닌 소소한 정보를 올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생각한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 이야기나 나만 좋아하는 물건의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쓸데없는 말을 완성되지 못한 문장으로 바꿔 보여주는 일이 싫증 날 때도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공감을 눌러주면 내가 꽤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왜 이런 식으로라도 존재를 증명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된 걸까. 언제부터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게 돼버렸을까.      

               





























 -뒷편에 계속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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