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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Oct 28. 2020

비우고 채운다2











몇 년 전부터 쓸데없는 것들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생활하는 공간 대부분을 빈 곳으로 만들었다.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곧 불행을 짊어지는 것이라는 도미니크 로로의 말 대로 비워진 곳에는 조금씩 행복과 만족감이 들어와 쌓였지만, 여전히 휴대전화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온라인 공간에 글을 내보이는 나의 처지, 책을 출간해주는 출판사를 생각하면 당분간 휴대전화와 SNS를 정리하기는 힘들 것이다. 며칠 전에도 옷을 한 상자나 재활용에 내다 버렸다. 잡다한 물건을 버릴 때마다 더 버릴 것이 없는지 끊임없이 찾게 되는데 그럴 때는 즐겁고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버리는 행위를 이렇게 즐거워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생각한다. 버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고모를 닮은 것이라는 말을 언젠가 고모부에게 들은 적이 있다. ‘너희 고모는 말이다, 사람도 내다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진즉에 나도 버렸을 거다’라고 하셨다. 사람은 버리지 않고 잡다한 것만 버렸던 고모를 닮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나 빈 상자를 가져다가 버릴 물건을 주워 담으면서 계속해서 놀란다. 세상에나, 이 작은 집에 버릴 물건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물건을 정리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또 한 상자가 채워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버려지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내 지나온 삶의 소우주가 담겨있다. 유난히 기분 좋은 일이 생겼던 어느 날 자축한다는 핑계로 술자리를 만들고 평소의 주량을 넘기도록 술을 마신 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고는 지갑을 뒤적거려 꺼내본 영수증 속의 단어를 보면서 생각한다. 참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도 먹었구나. 상자 속 물건들을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 참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도 사들였구나. 집을 점유했던 물건은 나의 일상을 이처럼 투명하게 반영한다. 가장 많은 건 부끄럽게도 옷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옷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일상적인 내 삶이 성에 차지 않거나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소유물을 미련 없이 정리한다.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내 삶에 새로운 탄력과 생기가 돋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리를 되풀이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작은 집이 어떤 꼴이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이제는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가릴 수 있는 눈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고 한낱 물건을 대할 때도 그렇다.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 하나면 된다. 부질없는 일과 물건에 얽매여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얽매임을 벗어버리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다하고 싶다. 이것이 진짜 내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마지못해 질질 끌려간다면 그것은 온전한 삶일 수 없다. 무가치한 일에 힘을 낭비하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삶을 쓰레기더미에 내던져 버리는 거나 다름이 없다. 생각해보면 지난 세월 쓸데없는 것에 많이 집착했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그만큼 자유를 잃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느 날 내가 있던 자리가 완전하게 비워졌을 때 먼지 쌓인 잡동사니가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싫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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