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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Nov 30. 2020

비우고 채운다3










수박 화채 한 그릇이면 뜨거운 무더위도 견딜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리그릇의 투명한 바닥이 보일쯤엔 어느새 이마에 맺혔던 땀도 식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남아있다. 크기가 작아진 마지막 얼음을 오도독 씹어 먹는 순간 때마침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인데도 팔뚝에 소름이 돋았었다. 그렇게 화채를 몇 번 더 해 먹으면 여름도 지나갔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기억일 뿐이다. 엄마가 살아 계신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때의 여름도 지금처럼 물속에 사는 기분이었는지. 어쩌면 엄마는 내 기억과는 다른 말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니가 어려서 몰라서 하는 말이지, 그때도 널어놓은 빨래가 마르지 않아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계절이 변한 게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변한 것일까. 아무튼, 그 시절의 여름과 지금의 여름은 뭔가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물건이 있다. “어서 와 건조기는 처음이지? 여기는 먼지도 없고 뽀송뽀송함만 존재하는 곳이야.” 지독하게 유혹적이다. 지난 8월 내내 고민을 했지만, 집에는 아직 건조기가 없다. 그의 유혹은 강하지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싶다. 건조기는 내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해 주겠다지만 막상 그 덩어리를 집에 들이고 난 뒤에는 할부금 지옥에 빠질 것이다. 이 물건을 사지 않으면 여유로운 시간과 풍요로운 삶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광고에 이제는 속고 싶지 않다. 그들이 조성하는 조바심을 거부한다. 이제는 집도 나도 최신 유행에 맞추어 치장하지 않는다.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 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들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면서 마음의 독립성을 키워가고 싶다.      










사람들은 유행에 뒤처지면 아직 쓸만한 물건도 헐값에 처분한다. 몇 년 사이에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시장이 점점 커진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의미도 없는 새 가구를 들여와 집안을 채우고 근사해진 집은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임시거처로 쓴다. 물건을 채울 때 결제한 카드 값을 해결하느라 집에 머물 시간이 점점 더 없어진 것이다. 멋진 집에서 마음껏 쉬지 못하니 집은 더 이상 휴식공간이 아니다. 새로운 물건을 구경하고 사들이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쉽게 멈추지 못한다. 남들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가진 것이 많을수록 원하는 것은 자꾸만 늘어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자식에게는 얼마나 물려줘야 하는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사서 한다.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확립하지 못했으니 사회적 지위나 연봉, 옷과 집의 세련됨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 이 불안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계층과 상황에 상관없이 널리 퍼져 있다. 장난감 상자에 없는 것 없이 모든 장난감이 다 있는데도 만족할 줄 모르는 아이의 투정과도 같다. 삶을 살아갈수록 허약체질이 된다.

삶의 허약함을 말하자면 나만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고군분투 살았다. 하지만 행복은 더 멀어졌고 마음은 언제나 전쟁터였다. 점점 더 억척스럽게 변했고 툭하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싶었다. 원하는 것은 자꾸 늘어났고 성격은 더 포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눈에는 자꾸 부자들만 보였다. 그러던 중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듯 몸이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고요였다. 한곳에 머물며 가만히 내 삶을 응시했다. 내가 끝내 다다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평온하기를 원하고 특히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안전한 삶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끝없이 의심했다. 마음의 불안은 눈 감는 날까지 끼고 살다가 죽어서 육신과 함께 사라지는 것인 줄 알았다. 불안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가장 평범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고 가까이 있는 간단한 의무를 다하고 음식과 옷, 집의 취향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삶을 살게 된 어느 날 깨달았다. 이거 할만한데? 예전보다 수입이 적어지면 당장 큰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그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갈 것이 적으니 들어오는 것이 적어졌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오히려 통장의 잔액이 늘어났다. 삶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도 견딜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웬만한 불운에도 흔들리지 않게 됐다. 예전 같으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상황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삶과 생활이 소박한 사람은 불확실한 운 앞에서도 별 어려움 없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그다음 순서는 마음이다.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신경질적인 성격. 쓸데없는 언쟁, 성급한 판단, 무절제한 인간관계를 재정비했다. 의미도 없는 말을 함으로써 남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인데도 하찮은 이유로 친구를 맺고 있던 사람도 끊었다. 나쁜 사람을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악의가 있고 파괴적인 사람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의 태도가 음울하고 불쾌한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육체는 살아있으면서 정신은 죽어있는 사람들. 끝도 없이 지껄이는 사람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남에게 주워들은 말을 자신의 의견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을 멀리했다.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남은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평온합니다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삶이 단단하게 세워지는 토대는 수입차도 아파트의 평수도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자신을 믿고 자기 삶을 소유해야 한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나를 둘러싼 주변이 갈등과 모순으로 얽혀있다면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때다. 그대로 놔두고 모른 척하며 살아간다면 정서가 불안해지고 삶의 진실과 의미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삶은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 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채웠다가도 불필요하다고 느끼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삶으로 가는 통로가 생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한 정말로 속 시원한 공간이 생긴 것이다. 비워내며 생긴 여백에 맑은 바람이 지나가고 서서히 맑은 정신이 되돌아오고 마침내 만족이라는 것이 찾아온다. 쟁이고 쟁이고 또 쟁이는 악순환을 끊어야 삶이 불만족스러운 진짜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생각 하나를 가슴속에 은밀히 간직해두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싹이 트고 마침내는 꽃이 피는 것처럼 단순한 삶을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만족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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