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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Aug 21. 2021

입을 찾는 일에 대하여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엄마의 반란>








해야 할 고민이 천지인 수희 님 안녕하세요.

수희 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부터는 답장을 써야 하는데, 답장을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어서 결국 이른 아침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편지를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 저는 밤마다 가려움 때문에 잠이 깹니다. 고장 난 어깨를 치료하기 위해 맞은 주사의 부작용으로 급성 알레르기가 생겼거든요. 네... 그렇습니다.(정말 가지가지합니다.) 처음엔 가려움이라는 그 징그러운 놈과 용감히 싸워 봅니다. 하지만 백전백패. 결국, 이불 킥을 하고 일어나 눈을 감은 상태로 팔과 다리를 미친 듯이 득득 긁다가 스테로이드 함량이 높은 연고를 듬뿍 짜서 거칠게 바르고는 겨우 잠이 듭니다. 잠이 부족하다는 건 정말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더군요. 만사가 다 귀찮아져요. 귀찮은 자에겐 한 평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우선 하늘을 보는 자세로 눕는 겁니다. 슬슬 허리가 아파지면 엎드리는 거죠. 뒹구르르.. 그렇게 한 바퀴 다시 두 바퀴. 그러면서도 책을 읽는 걸 보면 나도 참.... 

천정을 보는 자세로 누워 책을 읽는 건 벌서는 것과 비슷합니다. 책이 두꺼우면 금방 팔이 후들거리니까요. 그래서 얇고 가벼운 책을 찾아 읽습니다. 어쩌다 잠이 들더라도, 팔에 힘이 빠져 책이 얼굴에 떨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을 책을 선택하는 거죠. 책읽는고양이에서 출간된 얼리퍼플오키드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완벽한 책입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죠.  





    


저는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에게 홀딱 빠졌습니다. 170년 전에 태어난 여자가 지어낸 이야기에서 저를 발견하고 말았거든요.(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흔하고 유치한 ) 오늘 소개하고 싶은 단편 소설은 “엄마의 반란”입니다. 제목대로 엄마가 반란을 하는 내용입니다. 반란의 상대는 예상대로 남편입니다.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행동해요. 제 마음이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한 건 사라 펜(엄마)이 남편에게 정치적 발언 같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할 때부터였어요. 그건 선전포고처럼 비장하게 들렸어요. 남편에게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가장 먼저 묻더군요. 그다음에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렸는지를 상기시키면서는 약간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요. 명분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사라 펜이 무슨 일을 감행하려는 조짐을 느꼈는데 그때부터 마음 어딘가에서 탄산 방울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어요. 곧 터지겠구나. 하는. 나는 덩달아 신이 났어요. 양자경이 주연을 맡았던 홍콩영화 예스마담을 보는 기분과 흡사할 거라는 기대감이 차올랐어요. (1985년 영화랍니다. 이로써 옛날 사람 인증)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여형사가 나쁜 사람들을 때려눕히는 장면을 보면서 주인공과 함께 용을 쓰는 바람에 영화가 끝나고는 심신이 몹시 피곤했던 기억이 납니다. 양자경은 범죄조직을 소탕했을 뿐인데 나는 왜 남자만 골라서 때려눕혔다고 느꼈을까요? 아마 오래전부터 남자를 때려눕히고 싶었나 봅니다.   

   



이상하게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뒤. 그러니까 그 일이 까마득히 멀어지는 것을 보는 때라야 어떤 감정을 느낍니다. 늘 한발 늦는 거죠. 한참이 지난 후에 “아... 이건 아닌데,,, 그때 그 말은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었네?” 하고 혼잣말을 해요. 심지어는 30년이 지난 다음에 불현듯 깨닫게 된 경우도 있다니까요. 30년이 지난 일을 꺼내면 한심하다는 듯 웃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요. 나는 왜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면 그 이유를 그 사람에게 찾지 않고 전부 내 탓으로 여기고 불편한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걸까요? 문득 최창원이 생각나네요. 선한 얼굴로 하루에 스무 번쯤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뽑던 남자애. 선생님에게 말해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너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이해하라는 말만 하셨죠. 많이 억울했어요. 머리카락이 뽑힐 때마다 아팠고 화가 나서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이 바로 속수무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날 멱살을 쥐고 몸싸움을 했고 최창원의 셔츠에 있던 주머니가 찢어졌어요. 엄마 손을 잡고 최창원의 집에 사과하러 갔다가 “계집애가 왜 그렇게 별나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어요. 나쁜 일이 생기면 내 탓으로 돌리는 버릇과 남자를 때려눕히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건. 하하하...

   



사라 펜의 남편은 가정의 복지라고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식구들이 사는 집보다 소가 살아가는 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요. 결혼하면 새집을 지어주겠다고 했지만 40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식구들은 가축의 잠자리보다 못한 곳에 살게 하면서 소를 사들이기 위해 새 창고를 지으려는 남편에게 엄마 사라 펜은 마지막으로 물어요.      


“여보 새 창고는 뭐하러 지으려는 거지요?” 

“설마 창고가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남편은 유치원생이나 할만한 대답을 해요. 

“할 말이 없다고 했잖아. 난 아무 말 안 할 거야”      


사라 펜은 남편이 없는 사이에 행동을 개시합니다. 소를 위해 마련해둔 새 창고로 이사를 감행해요. 얼마 안 되는 낡은 가재도구를 옮길 때는 초인적인 힘의 소유자가 되었어요. 물건들을 싸고 침대를 실어 나를 때, 사라 펜이 춤을 추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이없는 건 뭔 줄 아세요? 집으로 돌아온 뒤 새 창고가 집으로 바뀐 광경을 보면서 남편이라는 작자가 울었다는 거예요. 나는 그 양반이 왜 울었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겠어요. 찾아보면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뭐 알고 싶지도 않아요. 우는 남편에게 사라 펜이 말합니다. 


“울지 말아요. 여보. 놀랄 필요 없어요. 난 미치지 않았고요.” “당신이 화낼 일도 아니에요.” “우린 여기 살러 왔고 앞으로도 여기 있을 거예요.” “우리가 소 못지않게 여기 살만한 가치가 있잖아요.”    

      



남자들은 왜 많은 걸 이해받는 걸까요? 씻지 않고 더러운 발로 이불을 밟아도 라면 하나를 제 손으로 끓여 먹지 못해도, 라면 국물이 사방으로 튄 식탁을 제 손으로 한번 닦은 적이 없어도, 사사건건 쓸데없는 참견을 해도, 논리에 어긋난 말을 떠들어대도, 고마운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하는,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이라도 왜 꾸준히 환대받는 걸까요?

나는 이런 의문이 생길 때마다 '남자'라는 단어를 지우고 그 자리에 ‘여자’라는 단어를 써봅니다. 그러자 몹쓸 여자 한 명이 울며 서 있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이 살던 17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여요. 네, 조금은 달라졌겠죠. 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너무 느려 터져서 내 속이 터집니다. 그래도 요즘은 지난 세월 동안 지워졌던 여자들의 입을 다시 그려 넣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 엄마! 남자들에겐 희망이 없어. 전 세계 남자 모두.” 딸의 짜증 섞인 푸념이 떠오릅니다.    


        



        

2021.8.21.     

창문이 많은 사무실에 일하는 수희 님을 상상하며.     





                         

ps: 남자에 대해 지나치게 오해하는 거라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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