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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Oct 21. 2021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

안톤 체호프 단편선 중 티푸스





수희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편지를 쓰는 즐거운 날이에요. 하하. 새삼스럽게 무슨 설명이냐고요? 글쎄요 새삼스럽게 즐거워서 그렇겠죠. 멀리서 바라봤을 때 무척 바빠 보이셔서 잘 지내시는지 궁금했어요.

지난주에는 많이 바쁘시구나 짐작하면서 조금 천천히 답장을 할까? 생각했어요. 제가 속도를 약간 늦추면 수희 님에게 조금이나마 여유 시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어요. 하지만 그 문제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에는 일상 속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잡다한 일들과 기다림과 설렘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편지가 늦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답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참! 수희 님, 지난번 편지에 체호프를 언급하셔서 깜짝 놀랐답니다. 마침 이번 편지에서 체호프의 단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아무튼 저는 2주 만에 다시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요즘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책에 대한 애정으로 쓰인 내 글들이 쓸데없는 오지랖이나 오만한 판정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편지도 마지막에는 조금씩 끝이 말려 들어가 결국 손바닥 만한 천 쪼가리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뭔지 모르게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거죠. 적어도 어떤 책에 대해서 만큼은 공감할 수 있다고 섣부르게 말한 적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만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나만 모르던 세계였다는 것을 알아채며 살아왔던 거 같아요.











나는 가을을 탑니다.라고 적어놓고 생각해보니 솔직하지 못한 문장이네요. 저는 사계절을 모두 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을만큼 탄다는 표현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계절도 없는 것 같아요. 왠지 낙엽 타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요. 그래서 특히 가을을 탑니다만  마음뿐입니다. 몸이 바닥으로 딱 가라앉아서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안보입니다. 하늘이 유독 예쁜 요즘, 마음은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재촉인데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서 집안에서 주로 시간을 보냅니다. 20평 정도의 삶이라고나 할까요. 방에서 주방, 주방에서 거실을 뱅글뱅글 도는 인생입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식재료를 소분하고 (요즘엔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를 그렇게 열심히 삽니다) 눈에 띄는 대로 냉장고 안의 얼룩을 닦고  평소에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고양이 정수기를 당근 마켓에서 발견하고 신이 나서 짱구 춤을 추는 날을 보냅니다. 대여섯 개 남짓 있는 베란다 식물들에게  돌아가면서 물을 주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을 살면서 늘 비슷한 감회가 듭니다. 나는 이런 삶을 바랐었구나 하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 없는 삶 , 요 정도의 선에서 깨알같이 작은 소원을 이루며 사는 삶, 뭔가 성취감이라는 걸 느낄 만한 일이 눈앞에서 손을 내밀 때도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단념하고 마는 나. 그리고는 아쉬움을 느끼기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 


나는 원래부터가 딱 그 정도의 크기인 사람이었지만 삶은 언제나 내 크기를 넘어섰던 것 같아요. 무슨 놈의 인생이 매번 준비 운동 없이 링 위에 오른 기분인지, 자주 눈앞이 캄캄했고 툭하면 무력감에 시달렸으며 불면증이 깊어 갔었죠.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슬픔과 절망을 안고 쾌활한 척하며 살았어요. 몇 년인지 모를 긴 세월을 끼니마다 삼각 김밥을 사 먹으며 회사를 다녔어요. 그러다가 끝내 올 것이 온 거예요.  암 선고. 인간이 아무리 신중을 가한다고 해도 질병이 주는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텐데 신중을 기하 지도 않았으니까 올게 왔구나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때는 내 인생에서 신을 가장 많이 떠올렸던 시기였어요. 신을 떠올렸다고 해서 살려달라고 기도를 한 건 아니었고요. 신이라는 존재를  미친 듯이 원망했어요. 아담과 이브가 무슨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던 것처럼  힘들기만 한 내 삶도 찾아온 질병도 이해가 안 됐거든요. 내가 무슨 대단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 큰 시련을 주는지 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병과는 관련이 없는,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미워하고 또 미워했어요. 육신의 고통은 그렇게 내 이성을  완전히 고장 내 버렸습니다.








안톱 체호프의 소설 <티푸스>에도 질병으로 서서히 이성을 잃어가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클리모프라는 장교인데요. 클리모프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전염된 지 모르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클리모프는 기차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종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끔찍함을 느낍니다. 몸이 아프기 때문이겠죠. 육체의 고통 때문에 지각과 의식의 대혼동 상태가 된 거예요. 그뿐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 구기 굽는 냄새, 아름다운 여자가 환하게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치아까지 역겨워합니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한 거죠. 짜증이 솟구치지만 힘이 없어서 짜증마저 마음껏 내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세상만사가 전부 불만스럽게 여겨지고 거의 모든 것이 눈에 거슬리는 그때가 바로 육신에 고통이 엄습해 올 때였습니다. 다행히도 클리모프는 앓을 만큼 앓다가 정신이 들었어요. 완벽히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커튼을 묶는 끈까지도 아름답게 보였으니까요. 정신이 돌아오니까 기차 안에서 끔찍하게 저주를 퍼부었던 아름다운 여자의 하얀 치아도 생각나고 먹고 싶은 음식과 담배 생각이 나기 시작했죠. 그렇게 조금씩 기운을 차렸지만 일주일 후에  다시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자신에게 티푸스를 옮은 여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그런데도 클리모프는 그 슬픔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요. 제가 보기엔 여동생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생존의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사실 결말에 대한 부분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왜냐하면 클리모프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소설이 끝나버리거든요. "하나님 나는 왜 이리도 불행합니까?" 이처럼 결말이 미결정 상태로 끝나고 주인공들도 이런 결말에 대해 어리둥절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체호프의 소설의 특징인데요. 그 점이 제가 체호프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어쨌거나 <티푸스>라는 제목의 이 소설에서 작가이면서 의사인 체호프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의 육체는 정신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고 저만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수희 님. 어디까지나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요 육신의 고통은 사람을 조금은 어리석게 만들고 때로는 괴팍하고 비사교적 이게도 만들어요. 평소에는 무시하던 미신에게 기대고 그것도 모자라 절에 갔다가 교회에도 가는 다중 종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돈에 초연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집착하게 되고  탐욕스럽게도 변합니다. 저는 입원실에 누워서 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영혼에서 깊어지는 주름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거울을 통해서 주름진 제 영혼도 똑똑히 봤어요. 정신의 끈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이 정도인데 가사상태인 인간은 오죽하겠어요. 정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될 게 뻔하지요. (체호프는 그런 가사상태의 인간을 매우 실감 나게 묘사하는 작가입니다)

다행히도 혼란의 상태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고통의 포물선이 최고점에서 꺾여 완만하게 내려오면 어딘가 조금 다른, 검고 깊은 눈매의 사람이 됩니다. 나를 뒤흔드는 일에도 담담해지고 쓸데없는 염려를 줄이는 방법도 알게 되고  평온으로 가는 길도 남들보다는 빨리 찾을 수 있게  되니까요. 저 또한 아픔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뒤에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급했던 성질이 누그러지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때의 절실한 마음이 약간 퇴색되기는 했지만요. 그러고 보면 고통을 겪고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인 것 같아요. 









수희 님

저는 요즘 부러 지질하게 삽니다. 아주 하찮은 일에 기뻐하며 지내는 편이에요. 오래전에 방영한 (무한도전도 아닌 더 오래된 버전 ) 무모한 도전을 보면서 개그맨들의 엉성한 몸개그에 낄낄대며 웃습니다. 황소와 인간의 줄다리기 라든가 지하철과 인간의 달리기 대결 같은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들을 나름 진지하게 실현하는 방송을 두어 시간 동안 보는 거죠. 그러다가 어제는 문득 내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고양이의 털 뭉치나 굴러다니는 먼지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도 심각하지 않게  사는 제가 무척이나 기특한 거예요.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즐거우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고요.


안톤 체호프의 소설도 요즘의 제 일상처럼 특별하고 대단한 사건이 없어요. 대부분 이야기는 평범한 설정 속에서 전개돼요. 아주 작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걸 받아들이는 인간의 다양하고 모순된 반응만을 파고듭니다. 처음에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폄하했던 서머싯 몸도 나중에는 누구도 체호프처럼 인물 간의 대화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재능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으니까요. 이야기가 매우 느리게 전개된다는 점도, 난데없는 대목에서 소설이 끝나버린다는 점도 좋아요. 비겁함, 비루함, 지루함, 자격지심, 시행착오 같은 것들이 골고루 섞인 작고 작은 사람들이 저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도 해요. 안톤 체호프의 소설 속에는 그렇게 작고 작은 사람들 천지인데요 읽을 때마다 저를 만난 듯 반갑네요.


참 오랜만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생생하고 친근하고 익살스럽고 우수에 찬 소설을 읽었습니다. 감사드려요.






2021.10. 21


김설


ps: 책을 읽으며 내 과거에 대한 연민을 멈추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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