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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Apr 21. 2022

봄날의 나른한 행복

오십에 길은 나선 여자/조안 앤더슨

수희님 안녕하세요.

지금은 해가 뜨기 전, 새벽 네 시 이십 분입니다. 사나운 꿈 때문에 잠이 깼어요. 개연성이 없는 두 종류의 꿈이었어요. 잠이 깨서 목이 마른 것도 잊고 한참을 망연자실했습니다.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꿈을 꿨어요. 턱시도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 정성을 다해 돌봤지만 나아지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는 꿈이요. 사실 어제 잠이 들기 전 길고양이를 돌보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어요. 사람들이 아무 힘도 없는 동물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지. 어떤 사람들로 인해 다치고 피 흘리고 죽어가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또 어떤 사람들이 하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흐느껴 울었습니다. 겨우 울기 밖에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고 여린 생명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내가 싫어졌어요. 통화를 할 때 그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작가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악한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나야말로 그 질문을 입에 달고 살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나도 악한 마음을 숨기고 살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대답할 수 없었어요. 그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을 해 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절실하게 묻고 싶어요. 사람이 이렇게 사는 거 괜찮냐고요. 진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냐고. 이 삶은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이런 생각은 그저 묻어두고 반짝이는 순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수희님, 조금 뜬금없지만 나는 복제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백 명으로 복제되어 이백 개의 직업을 갖고 버는 족족 고양이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잇몸병이 나서 침을 질질 흘리며 사료도 씹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약을 사다 먹이고 피부병이 난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려면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거든요. 길고양이 두 마리에게 사료를 먹이고 잠자리를 살펴주는 정도 밖에는 못하는 지금의 내 처지가 화가 납니다.

우리가 도대체 언제부터 마음을 삶에서 버려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만 여기게 되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살아오면서 뾰족한 마음에 수없이 휘둘리며 살아서겠죠. 그러면서 한없이 비겁해졌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없다고 여겼겠죠.. 그렇게 하루를 사는  사는  아니라 살아내는 거겠죠. 한창 젊을 때는 나도 그랬어요. 밤마다 이불속에 발을 뻗으며  번도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았던  같아요. 삶의 미련이란  그런 식으로 쌓이는 걸지도 몰라요. 그건 결국  몸에서 독으로로 쌓여가는 거고요.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마지막까지 마음을 지켜내는 일은 어렵기만 합니다.




또 다른 꿈에서는 돌아가신 엄마를 만났어요. 엄마는 일 년에 한 번쯤 꿈에 오십니다. 신기하게 엄마가 나타나는 꿈은 거의 비슷해요. 백이면 백 엄마가 나를 버리고 홀로 길을 떠나고 나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아이처럼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엄마를 찾아다녀요. 따라오지 말라는 말도 없이 다시 만나자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엄마를 원망하다가 꿈에서 깨요  어제 꿈에는 엄마와 함께 기차를 탔어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었어요.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목적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보고 거기에 가있으라고 하셨어요. 당신은 병원에 다녀오신다고 먼저 내리셨어요. 그러고는 나는 거기서부터 길을 잃었어요. 저승사자와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현대적인 옷차림을 한 남자들이 보여서 그들에게 길을 물었는데 속시원히 안내받지 못했어요. 이러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나를 버린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해서 꺼이꺼이 울었어요. 계속해서 엄마를 원망하며 낯선 역전을 떠돌다가 깼어요. 하... 진짜... 피곤...

 

내가 그런 꿈을 꾼 건 잠들기 전 읽은 책 속 문장 때문이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수희 님 요즘 나는 사생활 속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고 있어요. 쉰다섯이 된 김설이라는 여자가 살면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쓰고 있어요.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결정된 역할을 벗어던지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나가는 이야기, 누구에게도 숨겨놓지 않았지만 남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나의 서사.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이야기.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몇몇에게는 아름다울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이 작업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오래 품어왔던 소망이랍니다.



아무튼 어제는 조안 앤더슨의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라는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들었어요 제목 진짜 웃기죠? 저도 조금 웃었어요. 사생활 속 사생활만큼이나 직관적인 제목이잖아요? 사생활 속 사생활을 읽어주는 어떤 분이 내가 보낸 글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조안 앤더슨의 소설이 떠올랐다고 제목을 말해줬어요. 당장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찾았는데 2004년에 펴낸 오래된 책이라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는 조안 앤더슨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20년 동안 헌신적인 아내와 어머니로서 가족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던 여자가 자식들이 성장해 떠나고 남편과의 사랑이 식으면서 인생을 돌아보게 돼요. 그러다가 자신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며 치열하게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에요. 힘에 부치는 생선가게 점원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과 우정을 맺고 활기를 되찾으며 아직까지도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조금은 뻔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녀의 외침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나는 더 이상 행복을 갈망하지 않는다. 마침내 행복해졌으므로" 혼자가 되어서 비로소 자신을 찾은 조안 앤더슨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와닿았던 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그녀가 쓰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쓰는 작가라는 사실이 사생활 속 사생활을 쓰며 내 삶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조금은 덜어준 것도 같아요.



오십이 된 조안은 망가진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요


피해선 안 된다. 나의 태만의 결과와 맞서고 육체와 정신의 부조화를 치유하기 위해서 오늘 나는 여기에 나왔다. 그동안 새해 벽두마다 어김없이 올해는 운동을 하자고 결심했지만 번번이 2월 말쯤이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더 이상은 나의 살이 내가 느끼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방해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온전한 맨몸으로 날고 싶다. 내 몸을 좀 더 사랑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육체적 능력을 키우라고 배우지는 못했다. 이제 나 자신이 몸에 지웠던 제약을 걷어내어 몸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오늘은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몸으로 대접해줘야 한다. 내 나이 쉰 살. 운이 좋으면 여든까지는 살 수 있겠지. 이제 360개월 남았을 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내 엄마가 살아낸 시간을 생각했어요. 63년. 내 나이는 올해 쉰다섯. 엄마가 돌아가신 것처럼 나도 예순세 살에 죽는다면 앞으로 8년이 남았네요. 조안 앤더슨처럼 말한다면 96개월이 남은 거고요. 꼭 조안 앤더슨이 아니더라도 나는 늘 남은 삶이 짧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건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진지함과 절실함이에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해요. 나는 매일 내 몸을 달래요. 몸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동안 함부로 써서 미안했다고 용서를 구해요. 지나치게 피로하지 않게 조심해서 써요. 몸에 대해서 만큼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돼요. 자기 몸만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다름 아닌 엄마들이라는 걸 내 엄마에게 배웠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화해하는 것이라고 다산 선생이 말했다죠. 저는 몸에 관해서만큼은 많이 타협하고 비겁해지려고 해요.


자. 몸은 그렇다 치고 마음은 어떻게 할까요. 수희 님 나는 요즘 삶에 감춰진 목적 같은 걸 찾는 대신 그 삶의 의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이미 주어져 있는 행복과 순간순간에 즐거움을 발견하는 그런 능력자가 되고 싶어요, 상냥한 태도를 갖고 고집스러움도 좀 없애고  남을 신뢰하는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며 무례한 사람으로 늙어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수희 님 또 봄이 왔어요. 벚꽃은 한바탕 흐드러지게 피다 속절없이 졌고 이제는 철쭉이 울긋불긋 청승을 떨며 피고 있어요. 봄이 오면 요양병원에 계신 노인들도 휠체어를 타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꽃구경을 해요. 그분들의 얼굴에서 이 은혜로운 계절을 또 만나게 되어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는 마음이 보이는 듯해요. 나른하게 흘러가는 봄.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요?(문장 구림) 내 책상 위엔 읽을 책이 있고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써나가면 이보다 좋은 삶은 드물지 싶어요. 이런 평범한 날들을 조금은 시시한 듯 살아가는 것이 시마자키 도손이 말했던 진정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수희님. 5월이 되기 전 인천으로 가겠습니다. 할 말이 많이 밀렸어요



2022. 4.21

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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