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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l 24. 2022

엄마가 뭘 알아?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수희 님 안녕하세요

라이브 방송을 하고 그 후로 오랜만인 것 같아요. 편지가 좀 늦었습니다. 최근 몇 년은 이렇게 바쁜 일이 거의 없었는데 신기하게 올해  7월엔 만날 사람도 많고 완수해야 할 일도 지켜야 할 약속도 많았어요. 7월의 마지막 날까지 그럴 것 같습니다. 편지를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제야 차분하게 책상에 앉습니다.

수희 님께 첫 번째 편지를 보냈던 날짜를 찾아보니 작년 8월 13일이었어요. 편지 교환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일 년 가까이 되었고 이제야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기분이 들어요. 휴.... 살았다... 하는 마음. 그러면서 저는 지난 일 년 동안의 일들을 생각해 봤어요. 잘 써야 한다는 다짐과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싶다는 욕심이 무색하게 이 편지 교환이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죠. (물론 예상했던 일이지만요) 그게 다행이다 싶다가도 수희 님을 생각하면 나의 부족함이 수희 님의 반짝임을 흐리게 만든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러나 당장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섭섭함이 클 것 같아요. 심심한 일상에서 재미있는 놀이 하나가 쑥 빠져나간 것 같겠죠.  아직은 조금 더 우편함을 바라보고 싶은 심정인가 봐요.


그건 그렇고. 수희 님 저는 지난주 수요일 밤 11시 반에  30분 동안 버스 안에 갇혀 있었어요. 사방이 컴컴하고 불빛도 거의 없는 곳이었어요. 시동도 꺼지고 실내등도 꺼진 버스 두어 대가 커다란 짐짝처럼 서있었을 뿐 뭐하는 곳인지 짐작할 수 없었어요. 공터 같은 그곳에 버스를 세우더니 기사 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어딜 간다는 것에는 조금도 미련이 없다는 듯이 푸드덕  푸득! 단호하게 시동을 꺼버리는 거예요. 버스 안을 둘러보니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 혼자였어요. 덜컥 겁이 났죠. 재빨리 핸드폰을 열어 남은 배터리를 확인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로 전화를 걸지? 112인가? 119?  그러다가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고는 다급하지 않은 척 물었죠.


"기사님!!! 여기는 어디예요? 왜 이곳으로 온 거예요? "

잠시의 정적. 그리고는 조금 늦게 대답이 들렸어요.


"추추추 충전소에 왔어요. 기기기 기름이 떨어져서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이런 경우 충전소에 도착할 때쯤이면  미리 말씀을 해주지 않나?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나?  이 양반이!!!!! 나를 무시하나? 이 태도는 뭐지? 항상 이런 식으로 승객들을 대하시나? 무심하다 못해 무례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태도가 시골 버스에서는 흔한 풍경인가? 승객들은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는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 와중에 기름통에 기름이 들어가는 요란한 소리가 들여오기 시작했어요. 윙~~~~~~~~~~~~~~~~!!!!!!!!!!!!!!!!!!! 하필 앉아 있던 자리가 기름통 위였는지. 진동과 소리가 가까이 느껴져 곤혹스러웠어요, 게다가 시동이 꺼지면서 에어컨도 동시에 꺼져 찜통 안에 앉은 만두 신세. 셔츠 아래로 연신 땀이 주르륵주르륵 떨어지고 있었어요. 온몸에 흐르는 땀 때문에 간지러움을 느끼면서 혼자 묻고 혼자 짐작하고 혼자 결론을 내렸어요.


저 정도로 말을 더듬으신다면,  승객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도 기사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결코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않게 된 거고 어쩌면 그게 습관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는다고 놀림감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언쟁을 할 일이 있어도 마음껏, 속 시원하게 할 말을 하지 못하셨겠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승객이 한 명도 없는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 님의 피곤함과 외로움이 느껴져서 화가 났던 마음이 슬며시 누그러졌어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버스 회사의 무심한 운영에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중전소를 들릅니다. 승객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방송이면 기사 님과 승객 모두가 편할 것을,




수희 님 요즘 나는요.

흥분을 가라 앉히고 호흡을 가다듬고 마치 요가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정신수련을 하는 사람처럼, 명상을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툭하면 가만히 가만히 앉습니다. 진짜 그렇게 앉아 있기도 하지만 서 있더라도 그렇게 앉아 있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입장과 나의 입장을 바꿔보는 일에 몰입합니다. 나를 그렇게 앉게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딸아이예요..


"나는 어릴 적 어땠나?"

"엄마를 이해하는 딸이었나? "

19살 때 처음으로 수세미보다 더 수세미 같은, 당장 잘라서 수세미로 쓰면  딱 좋을 머리 꼴을 하고 들어 간 날도, 엉덩이가 보일 듯한 치마를 입고 나갔다 온 날도, 숨 막히는 분위기의 집이 싫어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외박을 하고 들어와도  엄마는 내가 집을 나가기 전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 계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몸이 아파서라기보다는 무기력 중이나 우울증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빠의 바람기, 그로 인한 외로움, 사람을 잃어버린 여자의 슬픔. 그런 것이 엄마를 쓰러지게 했던 거고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했던 거예요. 우리 남매는 엄마 혼자 책임져야 할 무거운 존재.  내 엄마는 다른 남자를 찾아 나설 용기도 없었고 돈을 벌겠다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씩씩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외로움과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어요, 씩씩함과 억척스러움은 마음먹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엄마를 보면서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엄마를 아는 척, 이해하는 척하는 지금, 수희 님! 고백하지만 이건 지금에서 하는 생각이에요. 나는요. 엄마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고 철도 늦게 들었어요. 나는 저러고 살지 말아야지, 나는 엄마같이 인생 망치지 말아야지.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을 어떻게든 피해야지,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새끼를 위해서라면 뼈마디가 아작이 나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거라고 다짐했어요.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그러고는 급기야 엄마랑 반대로만 하는 이상한 엄마가 되었어요. 딸의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야 하고 사사건건 참견하고요. 아이가 필요 없다는 데도 필요할 거라며 뭐든 미리 준비해주는 극성스러운 엄마. 과잉 관심, 과도한 친절.


수희 님도 아시다시피 딸은 곧 독립을 해요. 집을 구하고 자잘한 살림을 채워 넣어야 해서 요즘 한창 그런 준비를 하는 과정 중에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 모녀의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당부할 말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나는 당부라고 하는 말이지만 아이는 잔소리로 느끼는 수많은 말들, 그 말이 딸의 뒤통수에 꽂히는가 봐요, 그때마다 뒤돌아 보는 딸아이의 얼굴에서는 아, 지겨워 지겨워! 징글징글해! 하는 표정이 느껴져요. 딸에 대한 나의 애착을 어쩌면 좋은  지 모르겠어요. 나라고 지겹지 않은 건 아니에요.

"두고 봐라 저 원수 같은 딸 년을 내보내기만 하면 나는 이제 꽃길만 걸을 거야! "

"딸이고 뭐고 다 잊고 속 편하게 나만 생각하며 살 거라고! "하고 마음속으로 큰소리를 치지만 글쎄요. 이런 생각 자체가 딸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증명하는 건 아닐까 싶어 뜨끔해요.


수희 님도 그럴 때 있으세요?  필요할 때 , 딱 적절한 시기에 눈앞에  어떤 책이 불쑥 나타난 경험이요.

나는 사나운 애착이라는 제목을 보고 순간적으로 알았어요. 이건 내가 기다리던 책이다.  책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속에는  같은 딸과  같은 엄마가 등장해요. 둘은 자주 산책을 하는데요. 산책을  때마다 싸워요. 어떤 때는 죽일 듯이 싸우고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 않아요. 엄마가 딸을 딸이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한심해하고 싫어하는데  어쩔 수없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다시 마주 보고 닮은 것을 인정하게 돼요.  책을 읽는 동안 재밌었던 건요. 딸이 엄마에게 원망의 말을 퍼붓는 장면에서는 엄마와의 서글펐던 어느 날을 기억해 냈고요. 엄마가 딸에게 사납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딸과의 전쟁 았던 어떤 날을 생각했어요. 딸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엄마가 되었다 입장이 바뀌는 거죠. 그러면서 자동 역지사지 모드로 돌입하게 되더라고요.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딸아이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현명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는  어려울 거예요. 보나 마나 그럴 거지만 그러면서 생각이라는  하는  아니겠어요?

감정이 끓어올라 입에서 큰 소리가 날 것 같으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일단 앉아. 앉으라고!'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봐. 김설. 넌 할 수 있어. '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 딸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일지 모를 책 속의 문장 하나를 옮겨봅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번번이 머릿속 혈관이 터져버릴 것처럼 화가 나고 엄마 입에서 쏟아지는 그 문장들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엄마에게 쏟아내기 시작한다. 무식해. 엄마가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 엄마처럼 말해. 엄마가 말한 대로 그 모든 걸 엄마가 다 겪어봤다면 그 사람이 처한 조건이나 배경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고, 책의 의미도 더 풍부해지는 거야. 그렇게 되면 엄마도 책을 내고 싶어지는 거고, 엄마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배우고 공부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배워 워. 하물며 엄마가 뭐라고 못 배우는데? 나도 이런 이런 말을 하고 또 한다. 그러면서 우리 두 사람의 오후를 완전히 재앙을 만든다.



2022. 7. 24

자주 호흡을 가다듬는 김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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