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 Violin Sonata No.9, ‘Kreutz
여자가 절 유혹한 게 아니라 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타락이 뭔지를 가르쳐 줬기 때문에 타락한 겁니다. 타락을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가장 합법적이고 유익한 중독이라고 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쾌락, 용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죄가 없는 순수한 쾌락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 '크로이처 소나타'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자주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부부가 평생 함께 살겠다는 외면적 의무인 결혼 약속을 한 뒤 두 번째 달부터 서로를 증오해 이혼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겁니다.
-21p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가상의 위험과 진정한 위험으로부터의 끊임없는 구원만 있었던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99p
저 자신에 대해 말씀드리지만, 음악은 영혼을 전혀 고양하지 못합니다. 음악은 영혼을 전혀 고양하지도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흥분시키거나 자극합니다.
-145p
기차 안 승객들이 결혼과 사랑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흥분한 상태로 끼어들어 '모든 게 덧없다'는 식의 냉소적인 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자신이 아내 살인 사건의 장본인이라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얼핏 결혼과 사랑의 실패로 인해 피해 의식에 찌든
사회 부적응자의 터무니없는 하소연처럼 들리지만,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의 빈약함을 자꾸만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그의 이야기는
의문점을 가질 수 없었던-드러냈다간 순수한 호기심일지라도 불순한 의도로 오해받기 십상인-
'사회가 용인'한 제도, '정상적인' 시민의 의무, 역할에 대해
근본적 물음과 '당연함'에 대한 균열을 일으킨다.
번식기가 따로 없는 인간에게 연애 감정이란 얼마나 진실하다고 할 수 있는가?
왜 사회에서는 젊은 남성들에게 타락에 빠지는 걸 권장하면서도, 성병에 주의하라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미는가?
여성은 남성의 육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선택권을 무기로 삼아 남성을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는가?
사랑의 완성이라 여겼던 결혼을 해도 왜 누군가를 유혹하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애정과 본능에 대한 그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결혼의 의무를 지게 되면
마치 과거는 없었던 것처럼, 진정한 사랑만이 남게 되는가?
어쩌면 우리는 균열이 일어나는 일이 두려워
의문을 품길 회피했던 게 아닐까?
한 번 시작된 의문은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답을 찾는 과정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골칫거리니까.
평범한 삶에 낭만적 색채와 달콤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남녀 간의 사랑,
제2의 인생이라 불릴 만큼 중대한 이벤트이자 신성한 의무감을 부여하는 결혼.
그 모든 사회적 관념을 벗기고 꿈틀대는 욕망을 가감 없이 펼쳐낸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꽤나 발칙했다,
욕망에는 두려운 성질과 함께 유혹적인 성질도 있음을 다시금 일깨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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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 Violin Sonata No.9, ‘Kreutzer’ : I. Adagio sostenuto - Pre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