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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세서, 평범하지 않아서 문제라고요?

♬Chaka Khan | I'm Every Woman

by 로제

그러나 나는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기 센 여자'로 자란 내가 좋다. 그리고 바라건대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기 센 여자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한다. 기질이 센 여자아이의 존재가 그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여자가 기 센 게 뭐 어때서?

-하말넘많, '따님이 기가 세요'



만약 인생샷 대열에 참여하는 상태로 여행을 떠났다면 지금 내가 저 카메라에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아침에 바른 파운데이션이 땀에 녹지는 않았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 된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 그리고 그 속의 동행자를 잘 담아내는 것뿐이었다.

-62p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적은 임금을 벌어 비싼 월세를 내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적당한 남자를 찾아 결혼하고 출산해 육아하다 보니 어느 순간 경력이 단절되어 버린 삶. 여성들이 비혼 선언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게 되자 숱한 어른들이 우리에게 했던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는 말에 저런 의미가 담겨있었다.

-175~176p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면, 머리카락이 짧아지면, 파운데이션이 없으면 벗겨지는 권력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 얼굴은 있는 그대로의 얼굴일 뿐이고, 내 몸은 그냥 몸 그 자체임을 받아들였다.

-183p



비혼에, 기가 세다는 얘기를 듣는 여성의 삶은 어떠할까?

여성이 비혼을 밝히는 일도 아직까진 평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기가 세다고까지 한다면?

누군가에겐 낯섦에 낯섦이 더해져 '나와는 다른 삶'이라며 깊게 개입하고 싶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반대다.

오히려 그 비범함이 내겐 더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더 깊이 알아보고 싶게 만든다.


한편으론 이 책의 제목 때문에 '그럼 그렇지'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비혼이라고 하면 '기가 세다', '여자답지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에.

하물며 페미니즘 사안을 다룬 유튜브 채널에 토크쇼까지 진행한 저자들인데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겠는가?

그래서 나는 더욱 이 도발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 기가 센 여성은 남성들에게 인기가 없는 반면, 동성 간에는 인기가 많은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어째서 사회적 기준에서의 여성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기가 센 여성'은 동성에게 인기가 많은 걸까?

예외의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 인기의 이유는 오히려 그들이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성들이 다 표출하지 못하는 생각과 감정을

그들은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사회적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여성들은 응당 해야만 하는 역할의 전복, 거기에서 오는 해방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는 게 아닐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기가 센 여성이 모든 동성에게 인기를 얻을 순 없듯

모든 남성에게도 인기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취향이란 건 너무도 다양하고, 기가 세거나 리드해 주는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도 분명 존재할 테니 말이다.

항시 성별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해야만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인 우리에게,

평범하고 옳은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회에서 정한 기준이란 얼마나 옳을 수 있는 걸까.

그저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며 사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이어야 할까?


하나가 맞다고 하여 나머지가 다 맞을 수는 없다. 하나, 둘까지 맞더라도 셋부터는 틀릴 수 있다.

기가 센 여성이라고 해서 꼭 투쟁적인 것은 아니다. 비혼인 것도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다.

기가 세다고 보는 것도 우리의 해석일 뿐, 그저 자신답게 살아가려는 한 사람뿐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다들 누군가의 시선으로서가 아닌 자신으로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고만 싶다.

그렇게 계속 탈피를 거듭하기를 함께 노력하며

나에게, 너에게 편견이 아닌 해방을 주는 삶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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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ka Khan | I'm Every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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