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ac | Keep Ya Head Up
페미니즘에 휴머니즘이 포함되는데도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구도를 짜놓아 무의미한 논쟁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 이것은 모두의 삶에 아주 중요한 주제, 이를테면 모든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젠더 불평등 문제 같은 것마저 논의할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오혜민,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타인을 차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요?" 어지간한 사람들은 "아니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차별을 끝내자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는 뭐가 문제죠?"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22p
그런데 혐오를 표현하지 말라는 규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까요?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는 여성 혹은 이주민 등의 사례를 떠올려 봅시다. 규제는 유독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될 때가 많습니다.
-37p
젠더 뒤에 붙는 '갈등'이란 말은 또 얼마나 안일한 표현인가요. 누구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를 '갈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남의 불행을 강 건너 불구경하겠다는 뜻이고, 그것은 이미 자신이 특권을 누리는 자리에 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갈등은 최소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쓸 수 있는 말입니다.
-131p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2백 번도, 2천 번도 아닌, 무려 2만 번이다.
제목에서부터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저자의 고단함이 전해졌다.
또,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뿌리가 깊다는 걸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성평등을 얘기하면서 군대 얘기는 왜 안 하나요?"
"페미니즘이 검열의 도구가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면 나도 '무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
'아니, 아직도?'
이 밖에도 많은 질문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차별을 겪은 적이 없지 않지만
성별이나 어떤 차이를 잊게 할 정도로 인간적으로 우정을 나눈 남성들이 있어왔고,
평소 누군가와 페미니즘에 대해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보니
더 충격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나도 페미니스트임을 굳이 숨기지는 않기에
언제든 저런 질문들을 마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저 질문을 들었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를 떠올려보니
바로 만족할 만한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지가 않아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는 나부터가 제대로 이해를 해야 함을 자각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제대로 이해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앞으로 어떻게 페미니즘을 오해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충격의 2연타. 바짝 정신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6년간 강의실 또는 과제물을 통해 자주 받은 질문을 엄선하여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은 책이다.
'페미니즘' 하면 꼭 나올 법한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어
평소 페미니즘에 대해 의문점이 많다거나, 자주 페미니즘 관련 질문을 접하는 사람이
핵심 요약본 삼아 읽으면 좋을 듯하다.
다만 책의 두께에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디테일하고 풍부한 답변을 기록한 책은 아니기에
사전에 이를 감안하여 읽는다면 조금은 아쉬움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충격을 계기로 더 깊이 알고 싶게 만들었다는 점,
주요 페미니즘 사안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서라도,
'내가 만일 2만 번씩이나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게 된 것만으로도 읽기를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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