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leferre | Valse Lente
그가 헤치고 나아가는 이 밤은 불행과 공포와 만회할 수 없이 산산조각 나버린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 모두가 이미 음악이 되어 오로지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다.
-안드레이 마킨, '어느 삶의 음악'
이 고통, 이 달, 몰라볼 만큼 변해버린 그의 삶, 무엇보다 그 단순함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열쇠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나 단순하게 두 사람은, 사랑은 아닐지언정 이 평화를, 휴식을 나눌 수 있었다. 그저 한 손의 열기 속에서 지탱되는 망각을 나누었다.
-69p
이따금 떼어놓기 어려운 음들의 결합에 부딪힌 두 손은 뒤로 되짚어 올라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 방황이야말로,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충만함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임을 그는 감지했다. 거기에 무언가를 더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77~78p
창백하고 어슴푸레한 겨울의 눈밭을 연상시키는 표지,
담담하게 아름다운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 [어느 삶의 음악].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의 제목은
기차가 막 지나가고 난 자리, 햇살이 가만히 스며드는 풍경을 연상시키며
따스한 애수를 불러 일으켰다.
내용의 전개 방식은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와 유사하다.
기차역 안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장면이 과거로 전환되고,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다.
화자는 한때 재능 있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렇지만 암울한 시대를 만나 첫 공연조차 국가(소비에트)의 탄압으로 치르지 못하고,
군복을 입은 시체 더미 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닮은 한 군인을 발견하고는
옷을 갈아입은 뒤 정체성을 바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새로운 군인의 삶을 소화한 그였지만.
어느날 만찬 자리에서 요청받은 연주에 응하면서
갑자기 음악이 '터져 나와' 과거 피아노를 알았던 자신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죄수의 삶을 음악 하나로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의 삶을 그저 불행했다고, 어리석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는 일찍이 아름다움을 알았고, 원래 그렇게 되어야 했던 것처럼
음악으로 존재하는 삶, 아름다움으로 존재하는 삶을 택했기 때문이다.
현재로 돌아와
그가 연주회장의 객석에 앉아 피아니스트가 나올 무렵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은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용기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그는 일찍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았기에
정체성을 바꿔가며 생의 연주를 계속 해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떤 삶은 음악으로 인해 험난한 길을 걷지만
음악으로 인해 아름다울 수 있다.
>>>
♬Tailleferre | Valse Len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