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그려나가고 있다.

♬Sarah Vaughan | All The Things You Are

by 로제



정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규범적 압박의 체험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을, 이 조건을 정복할 수 없음이 인간의 원죄를 구성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를 마땅히 밀어붙여야 할 순간에 움츠러들고, 성숙하게 물러나야 할 때에 옹졸하게 주관을 고집하고 맙니다. 너무나 자주 그렇습니다.

-이하영, '선의 캐리커처: 선택과 시선의 틈새에서



보부아르는 폭력의 불가피성을 일종의 패러독스로 정식화합니다. 윤리적 실존은 인간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인간적 자유를 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가피하다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90p


"절대적으로 순수한 모든 선은 의지를 완전히 피해간다. 선은 초월적이다." 윤리적 실존 너머에 선을 위치 지음으로써 베유는 자의의 가능성에 대한 고통을 단순히 완화하는 것을 넘어 원천적으로 봉쇄합니다.

-128p


한편 머독은 가치의 실재를 주관성 너머에 설정하면서도, 그와 같은 '너머'를 쫓는 각 주체의 노력의 필연적 다양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도모합니다.

-172p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베유, 아이리스 머독의 윤리학을 통해 살펴보는 선(Good)의 캐리커처.

세 사람이 주장하는 각각의 선마다 '틈새'가 있고, 완성된 형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시선은 우리가 선에 대해 품는 기대인 선의 내재성(개별성)과 선의 초월성(보편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보부아르는 내재성에, 베유는 초월성에 선의 무게 추를 두고

머독의 경우 두 조건을 연결 짓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하지만 결국 선의 공백을 메꾸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


이 지점에서 뭔가 형태를 갖출 듯 말 듯 했던 선이 머독에 이르러서야 싹 지워지는 듯한,

선의 내재성과 초월성 말고도 다른 선의 필요조건에 대해 떠올려야 할 것 같은 알쏭달쏭함이 엄습했으나


책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나는 생각이 멈춘 자리에 스미는 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문장은 나를 안정시켜주면서도 앞선 세 명의 철학자와 달리 너무도 포근한, 정말 선한(좋은) 기분을 주어서다.



팽이버섯이 느타리버섯보다 빨리 상하며, 민들레는 늠름한 녀석도 귀여운 녀석도 있다는 사실을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는 어느 날이라면 가장 못난 인간에게조차 선이 미풍처럼 불어와주리라 믿습니다.

-192p



그렇다.

이 문장 속에도 쓰인 단어와 같이 선은 '공유'다.

말보다도 더 좋은, 공유의 감각이다.



p. s. 작가님, '중력뿐인 듯한 이 지상에서조차 읽기와 쓰기가 우리네 은총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 작품도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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