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선과 악의 비율은 변화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가 생각할 수 없고 또 앞으로도 생각할 수 없을 선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는 것, 그것은 순수한 선에 속하며 오직 선만을 만들어 낸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지팡이 끝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원래의 촉각과 다르다. 참된 행복 역시 별도의 다른 감각으로 지각되며, 그 감각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수련을 통하여 주의력을 전환함으로써 형성된다.
-46p
엄밀하게 말해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한계로서의 현재만을 제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에 종속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존재 조건이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종속된다.
-90p
선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주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육체의 혐오 때문이다. 육체가 혐오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선이다. 옳지 않은 것을 위해서라도 자극이 강하다면 육체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것이다.
-101p
시몬 베유의 사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력과 은총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깊게 알고 싶어 책을 펴들었지만,
나에겐 그 자신부터가 '중력'과 '은총'사이를 오가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글을 읽다 보면 반어법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순적인)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힌 것인지
아리송한 문장이 나오곤 했는데,
'우리가 증오하는 악을 통하여, 그 악을 증오하면서 신을 사랑할 것. -129p'
'공허한 무의 고통 속에서 더욱 충만한 실재를 발견할 것. 마찬가지로 삶을 깊이 사랑함으로써 죽음을 사랑할 것. -145p'
'고통이 있어야만 죄 없는 순수가 가능하다. -156p'
...등등.
'우리가 생각할 수 없고 또 앞으로도 생각할 수 없을 선 -185p'이라 했듯이,
베유가 말하는 선이 (선악을 포함하여) 이분법적인 인간의 지각을 초탈한 경지라면
대립항을 제시한 저 문장들은 반어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일관된 사상적 맥락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반어법이라 해도 그걸 뒷받침해 줄 논리를 전후로 전개해야 하는데
갑자기 툭, 지금까지의 흐름을 끊는 새로운 명제가 등장하니
난제를 극복하겠다는 전투력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결국 완독을 포기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의 이해를 돕는 데 있어서는 친절한 책이 아니다.
열린 결말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얻어 갈 게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깊게 와닿는 문장이나,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획기적인 발상도 적지 않았기에.
책과 저자가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꽤 임팩트 있는 첫인상이긴 하다.
시몬 베유는, 정말 '중력과 은총'다웠으니
이 첫인상이 맞는지 아닌지는 더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