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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Jul 06. 2024

자신의 몸과 옷차림에 대해 타인의 눈으로부터

여성의 몸을 가리고, 숨겨야 할 것으로 이야기하는 한국 문화에서 목욕탕은 매우 예외적인 공간이다. 교복 안에 속옷을 제대로 입었는지 검사하고,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단속하는 사회에서, 목욕탕 속 여성들은 자신의 벗은 몸을 거리낌 없이 타인에게 보여주며, 모르는 이의 때를 밀어주고, 샤워 공간을 양보하면서 말을 섞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목욕탕은 사는 지역, 경제적 계급, 정치적 지향 등에 관계없이 평등한 공간이 된다.

-Her.e 매거진, '1호 목욕탕'



자신의 몸과 옷차림에 대해 타인의 눈으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든 사회에서 여성들은 목욕탕에 진입하는 순간 나체로 타인 앞에 서게 된다.


목욕탕에 들어서기 위해 옷을 벗어던진다는 것은 타인의 눈으로 평가하는 사고를 벗어던지고,

나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몸을 마주하겠다는 예외의 경험, 탈피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날 것의 모습으로 평등해진 공간인 목욕탕에서는 처음 본 사람들과도 금방 경계가 허물어지고,

심리적 허용 범위가 넓어진 만큼 이야기의 범위 또한 손쉽게 넓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넓어진 만큼 수많은 감정이 오가고, 때로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기쁨뿐 아니라 고통도 느끼게 된다.



몸에 묵혀온 때처럼 감정의 묵힌 때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내 것'임을 알게 된다.


타인 역시 나와 동등한, 자신만의 몸과 시선과 감정을 가진 또 다른 주체임을 알게 된다.


희뿌연 김이 서린, 둥둥 떠다니고 아른거리는 목욕탕에서 마주하는 날 것의 풍경은 몽롱하다.

경계 지어진 현실 밖의 장소이기에 더 그렇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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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Coltrane ft. Pharoah Sanders | Journey In Satchidan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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