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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제 Jul 12. 2024

왜 내 앞에서는 그토록 위엄을 갖춘 어른이

♬Lonnie Johnson | I'll Get Along Somehow


미국의 성인 흑인 여성이 가공할 만한 존재로 부상한다는 사실은 흔히 놀라움과 혐오감, 심지어는 호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좀처럼 생존자들이 쟁취한, 투쟁에서 얻은 불가피한 승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열정적인 호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존중을 받기는 한다.

-마여 앤젤루,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왜 내 앞에서는 그토록 위엄을 갖춘 어른이 백인 앞에만 서면-심지어 백인 아이 앞에서조차-자신을 낮추는 것일까? 대체 흑인이 이전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평생 동안 백인에게 위협을 받아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흑인)만의 세계가 있고, 저들(백인)의 세계로 나뉜 것일까? ...


내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남부에서 성장한 흑인 소녀라면, 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문을 품어야 했을까.

백인들에게 받는 차별 못지않게 쌓여만 가는 의문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았을까.


명쾌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어른들 틈 사이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아야 했던 흑인 아이는 그 혼란스러움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투를 해야 했을까.

비밀스러운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어디까지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건지, 허용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질문을 던졌어도, 돌아오는 게 침묵이라거나 비껴간 답일 뿐이라면?


나중에서야 주인공 마거리트는 "그녀(할머니)의 아프리카 오지 같은 은밀함과 의심 많은 성격은 결국 노예제도에 의해 형성됐고 몇 세기에 걸친 약속과 약속의 파기로 더욱 굳어졌다."고 회상하며, "만약 흑인에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면, 그 흑인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가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라는 미국 흑인 사회의 격언과 함께 당시의 분위기를 이해하게 된다.


새장 속에 갇혀있지만 나의 정신은 새장 밖의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좀처럼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한 나의 욕망을 누를 수 없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지금도 어딘가에는 연유도 모른 채 새장 속에 갇혀 때로는 흐느끼며, 때로는 목청을 드높이며, 때로는 읊조리며 저마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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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nie Johnson | I'll Get Along Some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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