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또라이
‘또라이에게도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사실과 많이 다르다. 다만 남들과 차별화된 어린 시절을 지나 이렇게 또라이가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버지의 직업상 늘 이사를 다니고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해야 했던 나는 굴러 굴러 어느새 또라이가 되어있었다.
나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의 부모님, 이OO사장님과 박OO여사님은 목포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셨다.
아빠는 목포 섬 출신으로 섬(무인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집의 장남이다. 할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중학생시절부터 목포 즉 뭍으로 나와 자취를 하며 학업에 매진하였다. 쭉 학업에 매진하면 좋았으련만 어린 이사장님은 어린 박여사님과 눈이 맞아 연애의 길로 들어섰다.
엄마는 가난한 집의 육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일찍부터 가정의 경제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썼듯이 아빠와 일찍 눈이 맞아 결혼을 했고 그렇게 양쪽 집의 장남과 장녀는 가정을 이루고 각자의 집까지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의 집은 부유한 가문인듯했으나 빚이 더 많은 집이었다. 이사장님의 밑으로 줄줄이 있는 동생들을 가르치고 돌봐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박여사는 속아서 한 결혼이라고 두고두고 한탄하셨다. 하지만 두 분 다 서로 속아서 한 결혼이라고 하는 만큼 진실이 뭔지는 나도 모르겠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결혼생활이란 정말 전쟁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도 평화의 손길은 때때로 우리 자매를 만들었고 그렇게 난 딸 셋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천생여자인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우월한 미모를 자랑했다. 진한 쌍꺼풀과 큰 눈, 새까맣고 곱슬곱슬한 머리, 오뚝 솟은 코, 하얀 피부. 언니를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OO는 미스코리아 나가야겠다’라고 했다. 딸 부잣집의 막내는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고 했던가. 동생은 ‘OO는 인형 같아’, '어쩜 이렇게 귀엽니'라고 하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자던 나는 언니와 동생이 눈을 뜨면 그 큰 눈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럼 나는 어떻냐고? 당연히 외모는 언니, 동생과는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언니와 동생에 대해 칭찬을 하고는 날 보고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OO은 착하지? 여자가 착하면 되지.”
오죽하면 날 보고 박여사는 안타까움에 늘 OO은 외모에 항상 신경 써서 언니와 동생에게 밀리지 않게 노력하라고 했을까. 내가 봐도 엄마, 아빠, 언니, 동생은 가족 같은데 나 혼자만 그 누구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농담 삼아 말하는 OO는 다리 밑에서 데려왔다는 말을 한동안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들었다. 이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 때쯤에는 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나와 같은 동족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지금도 우리 세 자매가 모이면 늘 말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세 딸을 둔 아빠가 어린이날 선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미인형 3세트를 사 오신 적이 있다.
“우리 딸들, 아빠가 뭐 사 왔는지 한번 봐라.”
“와~ 이거 미미 인형 아니에요?”
“정말? 너무 이쁘다. 내가 내가, 먼저 고를래.”
언니는 검은 머리에 핑크색 드레스 입은 인형, 나는 금발에 흰 드레스 입은 인형, 동생은 갈색머리에 노란 드레스를 입은 인형을 고르고 우린 비비안, 수잔, 세라라 이름 지었다. 언니와 동생은 모두가 생각하는 대로 인형 머리를 아름답게 묶기도 하고 꾸며주기도 하면서 아기자기하게 놀았다.
"비비안, 우리 이쁘게 꾸미고 무도회 가자. 왕자님도 오신대."
"왕자님과 결혼하면 멋진 궁전에서 살게 될 거야. 머리를 땋고 드레스를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어느 날 언니와 동생이 인형과 무도회 놀이를 할 때 난 수잔과 무도회에 가기가 싫어졌다. 어찌 보면 미미인형보다는 로봇에게 더 관심이 있던 나에게 무도회는 너무 시시한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군대를 보낸다며 수잔 머리를 박박 밀었다. 수잔을 연병장에서 훈련시키다 문득 혼자라 군대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안, 세라, 너희도 군대 갈래?”
그렇게 언니와 동생 인형까지 동반 입대시키기 위해 머리를 밀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들의 사랑스러운 인형의 머리카락이 모두 잘렸다는 사실에 동생과 언니는 대성통곡했다. 인형 3명을 모두 동반 입대시킨 그날, 난 아빠의 지휘봉에 종아리가 멍들 때까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