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치원은 내무반

행복한 또라이

by 보라

눈치가 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아빠는 직업군인이셨다. 태어나면서부터 30년 가까이 보고 지내온 사람이 군인인지라 마트보다 PX가 익숙하다. 어릴 때는 이 세상이 모두 군인과 민간인, 이렇게 두 분류로 구분되어 있는 줄 알았다. 잦은 이사는 숙명이었기에 난 그만 유치원에 입학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 당시 보육시절은 지금처럼 잘 되어있지 않았기에 5, 6살의 아이들은 대부분 유치원이 아니면 다닐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 중간 어디쯤에 끼어 어느 곳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서 얌전하게 노는 연년생 동생과는 달리 난 툭하면 어디론가 사라져 부모님을 걱정시키곤 했다.


“OO 못 보셨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OO, 저기 연병장에서 공 차고 있던대요?”

“아이고, 내가 못살아.”


“OO아, 언니 어디 있는지 아니?”

“OO언니, 탱크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피났어요. 아저씨가 의무반으로 데리고 간대요.”


군인들이 있는 부대는 결코 어린이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온종일 부대를 들쑤시고 다니며 아저씨들과 동고동락했다. 내무반에서 얼차래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고, 밥때가 되면 식당에서 짬밥을 함께 먹었다. 다행히 강제로 나라의 부르심을 받은 아저씨들은 어린 나를 귀여워했고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아저씨들의 기타 소리에 춤을 추고 군장을 꾸리는 것을 도와주던 나는 어느새 ‘깡패’로 불리며 아저씨들의 이쁨을 한 몸에 받았다.


여느 때와 같이 나미의 ‘빙글빙글’ 노래 맞춰 춤을 추고 있는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짬밥 먹은 지 6년, 나도 그 사이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비상이다.’


경험상 ‘비상’은 군인 아저씨 모두를 무섭게 만들었다. 웃으며 이야기하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다들 경직된 모습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난 바로 관사로 돌아가야 했다.


며칠 후 돌아온 아빠는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아빠가 찬 권총에 관심이 더 많았다. 장난감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함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평소에는 쳐다보기만 할 뿐 만져 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아빠가 씻으러 들어가셨다. 기회다. 권총집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만지는데 큰 소리의 호령이 들렸다.


“동 작 그 만!”


그리고 난 그날, 또 종아리가 피멍 들 때까지 맞았다.

나중에 내무반에서 들은 말로는 총기사고로 ‘비상’이 걸렸던 거라고 했다. 그러니 총을 만지는 날 보고 아빠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알 것도 다.


✔ 가끔은 운이 좋은 날도


고산국민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그 당시 교장 선생님은 미술에 열정이 넘치는 분이어서 각종 미술대회를 열어 인재를 발굴하는데 힘을 쏟으셨다. 그중 하나인 전교미술대회가 열린 날, 모두 그림 한 장씩 제출하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도화지와 물감, 크레파스 등을 들고 학교 주변에 흩어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하루종일 수업 하지 않고 그림 한 장만 그리면 된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런 날은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오후가 되어 제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각자 교실에 앉아 마무리 작업을 하고 나 또한 그때만큼은 얌전하게 앉아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학교건물을 그리고 있었다.

짙은 빨간 물감으로 단풍나무를 완성할 무렵 그만 하늘색으로 칠한 교실창문 위로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망했다.’

‘어쩌지, 다시 그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한데.’


맑은 파란색으로 칠한 창문에 떨어진 빨간 물감, 그 한 방울이 지워질 리 없었다. 그대로 제출하기에는 그 부분이 눈에 거슬리고 그렇다고 다시 그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빨간 물감으로 창문을 모조리 다 칠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본 반 친구가 말했다.


“미쳤어? 빨간 창문이라니. 누가 보면 불이 난 줄 알겠다.”

“불? 그것도 좋은데. 불구경도 하고 수업도 안 하고, 정말 재미있겠다.”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날 보고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갔다.


며칠 후 미술대회 입상자를 발표하는 시간, 교내 방송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은상, OOO”


분명 내 이름이 맞았다. 입상자들은 전교미술부가 되어 담당선생님의 특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물론 교장선생님께서 주시는 상장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직접 받기도 했다. 전에 손사래 치며 미쳤냐고 하던 친구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장을 든 날 향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입상자들의 작품이 교내복도에 전시된 날, 난 내 작품 아래 작품평을 보고 깔깔 웃었다.


[노을 진 하늘이 비친 교실창문과 붉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게 표현되었음]


그 이후 전교미술부에서 얻어걸린 운을 실력으로 바꾸기 위해 난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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