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는 떡잎부터 다르다

행복한 또라이

by 보라

어린 시절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15평 남짓의 군인 아파트는 다섯 식구가 살기에도 좁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언니의 공부를 위해 아빠가 마련해 준 하나밖에 없는 책상에 거꾸로 매달려 책을 읽거나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자곤 했다.


“애는 박쥐도 아니고 허구언날 매달려 있어. 바로 앉아서 책 읽어. 그러다 떨어진다.”

“OO야, 일어나. 나 숙제해야 해. 거기서 자다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엄마의 잔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려오고 언니의 투덜거림은 노랫소리에 얹힌 화음이었다. 그러다 이불을 책상에 덮어서 나만의 텐트를 만들었다. 그 안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그 안에서는 어떤 것을 생각하든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질문이 생겼다.


‘왜, 개미를 개미라고 하고,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엄마를 다른 걸로 부르면 안 될까. 왜 사람들은 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까. 우리 엄마도 엄마, 다른 사람의 엄마도 엄마라고 부르니 말이다.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


“엄마, 왜 엄마를 엄마라고 불러요?”

“애는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저기 가서 동생 좀 불러와.”

“엄마, 궁금해서 그래요. 왜 엄마를 엄마라고 하고 아빠를 아빠라고 불러요? 다른 걸로 부르면 안돼요?”

“아이참, 귀찮게. 엄마니까 엄마라고 하지. 뭐라고 해.”


“언니, 왜 언니를 언니라고 불러? 다른 걸로 부르면 안 되나? 언니를 뾰로롱이라고 부르는 건 어때?”

“OO아, 이상한 질문 하면 사람들이 널 이상하게 봐.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 거야.”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언니는 그래도 세상을 좀 살아봤다며 내게 조용히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려 했다.


“아니, 왜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고 개미를 개미라고 부르냐고. 처음부터 언니, 개미라고 정해진건 아니잖아. 다른 말을 쓸 수도 있는데.”


내가 떼쓰듯이 언니에게 물음을 토해내자 언니는 귀찮은 듯이 혀를 차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날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나마 언니가 가장 친절하게 내게 답을 해준 것이었다.


점심때 시작된 이 질문은 해가 지고 다들 잠자리에 들 무렵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나만의 텐트 안에서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깨달은 답. 난 너무 기뻐서 누워서 잠을 청하는 언니와 동생에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언니와 동생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누워버렸다.

엄마에게 가서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더니 배가 고프다고 했다.


“밥때에 먹어야지. 저녁상 치운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밥을 달래!”

등짝 한 대는 덤이었다.


눈물이 났다. 난 열심히 생각해서 스스로 질문의 답을 알아냈는데 그 누구도 칭찬은커녕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난 질문이 생기면 묻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날 내가 생각한 답은 대학에서 언어학을 배우면서 정확한 용어를 알게 되었다.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 그리고 창의성]


그때가 또라이 8년 봄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화,목 연재에서 목요일 연재로 변경됩니다.

제 글을 아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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