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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Mar 10. 2021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

지금의 삶을 반복해도 좋을 만큼

프롤로그


세상살이에 부딪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영화와 책을 보았습니다.

일터의 딱딱한 말들과 공기들 그리고 각자의 유리방에 갇힌 듯한 사람들 속에 지내는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낯선 소읍은 어두웠고 8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일상은 외로워졌고 마음 구석구석이 조금씩 아파졌을 때 ‘말(言)’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밥벌이가 ‘말(言)’을 하는 사람이라  ‘말(言)’속에 살고 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言)’과  내가 하고 싶은 ‘말(言)’이 간절해졌습니다.


‘야독회’라는 독서모임에서 2년 전부터 금요일 밤에 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영화와 책 속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내게 나직하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책과 영화는 더디지만 저를 부축해주었고 그만큼 일상은 조금씩 덜 외로워졌습니다.


불금 일기는 그들이 건넨 이야기들을 ‘꾸준히’ 받아 적으려고 만들었습니다.  

남들은 불금이라는데 뭔가 살짝 억울하기도 해서 그냥 이름이라도 ‘불금’이고 싶어   

‘불금 일기’라 이름 지었습니다.


저의 서툴고 더딘 기록들이 조금이라도 당신을 다독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 : 감독 클로드 랄롱드. 2020]


‘지금의 삶을 계속 반복해도 좋을 만큼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전까지’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를 이야기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문장을 마주쳤을 때 벚꽃이 초속 센티5미터의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문장 속 내용은 삶의 모든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라 했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더 알고 싶어 반나절 동안 유튜브를 찾아봤지만 역시 모호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한 ‘앎’으로 제가 느낀 만큼만 쓰겠습니다.


“아득하고 낯선 천상의 행복과

은총과 은혜를 꿈꾸며

학수고대하지 말고

다시 한번 더 살고 싶어 하며,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살 것!”

(니체 전집 12 중. 유튜브 리히터 책방 )


‘지금의 삶’과 ‘반복’이라는 단어가 조합된 문장을 보았을 때 반사적으로 되물었습니다.

 “지금처럼 매.일. 똑.같.이 살라고?”

(상대방을 어이없는 듯이 쳐다보며 약간의 무시당한 기분으로 대답하며)

이 말에 반문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지독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일 겁니다.  


‘지금의 삶을 계속 반복해도 좋을 만큼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전까지’


위에 있는 문장은 분명 모국어로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컨텍트」에서 언어학자 루이스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외계 생명체의 언어처럼 무척 낯설었습니다.

심지어 불쾌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허술하고 미욱한 사람이라 낯설게 말을 걸어오는 문장에게 당당할 수 없었습니다.  


문장의 미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지금의 삶을 다시 한번 똑같이 살게 되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금의 '이 순간'을 긍정하라는

영화 속 메시지가 보이자 일상의 ‘이 순간’이 빛났습니다.   


순간 순간의 서사가 모여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사람의 삶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생(生)의 진실입니다.  


저는 허술하고 미욱한 사람입니다.

‘지금의 삶 전체'를 항상 반복해도 좋을 만큼 잘 살아낼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 시간’ 정도는 항상 반복해도 좋을 만큼은 살아야겠다는 ‘긍정의 힘’을 영화에게  받았습니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음악을 들으며 ‘양갱’이와 집 근처 둑방 길을 산책하는 한 시간.

주말 아침 가볍게 요기를 하고 ‘Journey’의 노래를 들으며 브런치의 글들을 읽는 한 시간.

불현듯 마음이 고플 때 오랜 스승을 만나러 가기 위해 구불구불한 죽령을 넘는 한 시간.

“........................................................................................................................”

미처 담지 못한 빛나는 순간들을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 말줄임표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긍정의 양말'을 신은 헨리  이미지 출처: 다음  

[못다 한 이야기]

헨리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스스로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 헬렌을 만나 치유를 받을 무렵 헬렌 역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 헨리는 양말을 추켜 신으며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습니다.

헨리가 다시 ‘삶의 긍정’을 다짐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늙어가는 것’과 ‘글을 쓰는 것’에 관한 말도 걸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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