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그림
한 아이는 동물의 시신을 운반하고, 무덤을 만드는 역할을 해요.
한 아이는 동물을 묻은 후 읊을 시를 쓰고, 노래하는 역할을 해요.
한 아이는 동물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눈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해요.
막연히 '장례', '장례식'을 상상할 때면 '장례를 치르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날까',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복잡한 장례절차를 다 챙길 수 있을까' 이외에도 여러가지 생각, 걱정, 호기심 거리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고는 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장례를 치뤄보니 눈물이 흐를 때는 하염없이 흐르지만 분명 그치는 순간이 있었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는 고인(故人)과 관련된 모든 것에 상실이 공허히 자리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말 그대로 '그대로' 였지요. 장례절차는 장례지도사님의 지도에 차근히 맞추어 가다보니 '복잡하다' 보다는 '다음 절차와 시작 시간'을 기억하고, 가족들에게 알리면서 서로를 챙기는데 집중하게 되었던 듯 싶어요. 눈 앞의 한 걸음, 바로 다음 한 걸음만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집중하는 것이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을 살아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지혜가 아닐까 싶었지요.
사실 '장례(葬禮)'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장사(葬事)를 지내는 일. 또는 그런 예식'을 의미해요. 또한 '장사(葬事)'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일'을 의미하고요. 즉, 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를 정리해본다면 '장례(葬禮)'란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장례'는 '사람'에게 한정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뤄주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그림책에서 역시 아이들이 장례를 치뤄주는 대상은 동네의 길가에 죽어있는 동물들이 대부분입니다.
널리 통용되는 단어가 사회·문화적 흐름에 따라 의미와 사용범위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곤 합니다. 기분 좋게도 지금과 같은 흐름에서는 '희망'적인 방향으로 무게가 더 실리는 듯 해요. 아무래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속 세 명의 아이들이 19마리가 훌쩍 넘는 동물들의 장례를 치뤄주며 자연스럽고, 천천히 성장해가는 모습에서 그 힌트를 얻은 듯 합니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역할로서 장례식에 참여하는 모습'이 그려져있어 매력적이었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그림책처럼.. '죽음을 그리는, 퍼플아티스트'도, '죽음에서 시작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죽음학교'도 각자에게 자연스러운 역할로서 '죽음', '죽음소통' 분야에서 활동해갈 수 있기를. 그 모습 자체가 자연스럽고도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표현, 같은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존중, 용기, 자유'를 기본으로 한다면 충분히 하나의 시장을 형성해가는 동료로서 함께 '죽음', '죽음 소통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퍼플아티스틑와 죽음학교가 될 수 있기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