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울렸다.
“아이고, 회원님. 안 드실 거잖아요? 그리고 전화 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전화 한 마음이면 저와 한 약속도 잘 지킬 수 있을 거예요. 이따 센터에서 봐요.”
“네… 코치님 고마워요!”
귀여운 그녀의 투정이었다. 면을 유독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그 이후로는 비슷한 전화는 없었다.
운동 시간이 되면 그녀는 짱구머리띠를 하고 나타났다. 기분 전환도 되고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아 좋다며 나에게도 선물했다. 비장함 마저 느껴지는 그녀는 무거운 몸이지만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체성분 검사날이 되면 늘 떨리는 표정으로 상담실로 들어왔다. 코치 생활을 하다 보면 상담실로 들어오는 표정만 봐도 그동안 나와한 약속을 잘 지켰는지 알 수 있었다. 떨리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최선을 다한 것이 분명했다.
체성분 검사를 위해 올라간 그녀의 뒷모습은 처음보다 붓기가 빠진 모습이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검사 결과는 숫자일 뿐이에요."
건강을 해치는 다이어터의 정해진 경로였기 때문에 나는 미리 그녀에게 알렸다.
결과를 받아 든 그녀는 예상을 했어도 기대를 한 모양이었다. 실망한 그녀는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저 이번에는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긴 했나 봐요.”
“네, 그런데 생각보다 나트륨이 빠지는 폭이 커서 다음 주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
코치 생활을 하면서 이성적인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그녀가 납득할 만한 위로를 전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 생겨 잠시 센터를 비우게 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카카오톡으로 연락할 때마다
“코치님, 걱정 마세요. 전 잘하고 있어요.”
다시 센터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속도가 빠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보다 노력을 더 한 모양이었다.
다이어트 대회까지 한 달 남은 시점이라 이 상태로라면 좋은 결과도 예상할 수 있었다.
자리를 비운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에 최선을 다했다.
직전 대회를 준비하며 다친 무릎 때문에 함께 뛰진 못했지만, 그녀 곁을 지키며 응원을 더했다.
대회 마감을 보름 정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운동을 마무리한 후 한시름 놓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센터를 찾아왔다.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긴 했지만, 잔뜩 성난 그녀의 남편은 무작정 센터를 들어왔다.
나도 그녀도 당황했다.
알고 보니, 얼마 전부터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잦아진 모양이었고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센터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일단 그녀의 남편을 진정시킨 후, 함께 상담실로 들어가 이야기했다.
“화가 많이 나신 거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 부분이 있으면 말씀하셔도 돼요.”
“코치님, 와이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도 소홀해지고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나는 고민했다. 그녀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바로 남편인데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녀가 원하지 않을 거 같아 하려던 말은 멈추고 방법을 찾아볼 테니 일단 먼저 댁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고 상담실에 앉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했다.
“코치님, 이제 보름 밖에 안 남았는데.. 어쩌죠. 그리고 죄송해요. “
“음, 일단 지금 상태로 유지만 잘하셔도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걱정 마세요. 계속 저랑 연락하면서 집에서 운동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네.. 죄송해요.”
다이어트도 좋지만 가정이 더 중요하기에 나는 그녀를 최대한 안심시킬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흐른 후, 나는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하며 코치로서도 고려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도 이야기했다.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이니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도 말했다.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그녀는 다음날 센터로 나왔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밝은 표정으로 말이다.
일주일이 흘렀고, 대회 마감을 위해 체성분을 측정했다.
큰 무대에 오른 그녀의 모습은 별처럼 빛났다. 그리고 3등을 수상했다.
“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어요. 도와준 코치님 감사드리고, 남편 정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그녀의 수상 소감을 듣던 나와 그녀의 남편은 눈을 마주쳤고,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