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스트레스받은 날엔 불닭게티 한 그릇 먹어도 괜찮잖아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순간도 없습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온전한 끼니조차 챙길 수 없는 당신에게. 매주 금요일 소소한 한 끼를 들려드릴게요.
인생, 음식. 소소한 이야기 한 그릇.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 인간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는 불안과 위협의 감정. 이 두 문장은 어떤 단어의 뜻일까요? 바로 스트레스의 정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외래어 중 하나가 ‘스트레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저도 가장 많이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공허해지는 걸 느끼곤 합니다. 무언가에 시달리고, 그 시달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잔뜩 날을 세우게 되면,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 같아요. 그렇게 나름의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저를 둘러싸곤 합니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사실 배가 그렇게까지 고픈 건 아닌데 무언가를 먹어서 채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는 것보다 배를 채우는 일이 손쉽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럴 때 고르는 메뉴들은 특히나 자극적입니다. 맵, 짠, 단이 한데 어우러진 음식을 골라서 허기진 마음 대신 배를 채우는 거죠.
안팎으로 스트레스가 가득한 요즘. 오늘의 인생 음식은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날 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불닭게티’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별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뿐인데, 왜 그 하루하루는 고달픈 걸까. 유독 그런 생각이 드는 퇴근길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일을 하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속에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힘들기도 하겠죠.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요만큼의 위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버스에서 흥 넘치는 노래를 들어봐도,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봐도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내면의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버스에서 내렸고, 저는 가짜 배고픔에 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어떤 이성적인 생각도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집 앞 골목 어귀에 밝게 빛나고 있는 편의점에 홀린 듯이 들어가서 짜파게티 한 봉지와 불닭볶음면 한 봉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손 크고 밥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엄마를 둔 덕에 언제든 집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날은 건강한 엄마의 집밥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씻고 나와서 냄비에 물을 올리고 불닭게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습니다. 평소 짜파게티나 불닭볶음면을 끓이는 과정이랑 똑같아요. 다만 두 종류의 소스를 함께 넣고 볶아준다는 것 말고는요. 이 두 소스는 제 기준엔 정말 조합이 좋습니다. 매운맛을 짜장 소스가 잡아주고 거기에 달달함까지 느낄 수 있게 해 주거든요. 거기에 조리과정도 간편해서 성난 마음을 달래주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로 가득해 오히려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마음을 음식으로 채울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참 다행인 일입니다. 물론 채워진 배만큼 극적으로 공허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거나, 문제 자체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단돈 3천 원으로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투자해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이만한 가성비가 없지 않을까요?
-재료: 불닭볶음면 1 봉지, 짜파게티 1 봉지, 홍고추 조금, 청양고추 조금.
1. 물이 끓으면 불달볶음면과 짜파게티의 면을 넣고 끓인다.
2. 면이 익으면 물을 조금만 남기고 따라 버린다.
3. 불닭볶음면의 액상수프와 짜파게티의 수프들을 모두 넣고 비벼준다.
4. 약한 불에서 조금 더 볶아주고 달걀프라이를 준비한다.
5. 달걀프라이를 올리고 김가루와 참깨 후레이크를 뿌려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매운맛이 당기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요. 캡사이신 성분이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킨대요. 그래서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힘든 하루 속에서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잊게 해 준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마음도 듭니다. 사실 이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계속, 자주 먹는 게 몸에게는 미안한 일이잖아요. 몸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거짓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대신 배를 채우는 제 자신을 볼 때면 ‘오늘도 참아내지 못했구나.’하는 자책도 종종 하게 되거든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저는 불닭게티를 끊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자주 먹지 않도록 노력은 해 봐야겠지만요. 오늘 하루도 어딘가에서 꽉 찬 하루를 보내셨을 여러분들께 고생하셨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은 날입니다.
오늘 저녁, 매콤 달달한 불닭게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