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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Aug 28. 2020

아픈 날 찾게 되는 낙지 김치죽

EP04. 아프고 지칠 땐 칼칼한 낙지 김치죽 한 그릇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순간도 없습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온전한 끼니조차 챙길 수 없는 당신에게. 매주 금요일 소소한 한 끼를 들려드릴게요.
인생, 음식. 소소한 이야기 한 그릇.


조금 창피한 일이긴 한데 저는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약 먹는 걸 싫어한 탓도 있지만 가루약에서 알약으로 바꿔 먹는 시기에 약을 먹다가 된통 고생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약을 삼키는 게 좀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몇 개의 알약을 한꺼번에 넘기는 건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도 잘 가지 않고, 당연히 약도 잘 먹지 않게 됐어요. 대신 잘 먹고, 쌍화탕 한 병 먹고 푹 자려고 노력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아플 때엔 더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일, 매 끼니를 건강하게 잘 챙겨 먹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잖아요. 그래서 아플 때엔 유독 더 건강한 나만의 음식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건강에 관심이 가는 요즘. 오늘의 인생 음식은 아프고 지친 몸을 달래주는 저의 영혼의 음식 ‘낙지 김치죽’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더운 여름과 가을 사이가 되면 대학원에 다니며 논문학기를 맞이해 논문 초심을 준비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논문 주제도 어렵게 정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이 연구주제를 왜 선택했고,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어떤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인지 발표하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자리이기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제 지도교수님은 가장 꼼꼼한 분 중 한 분이셨어요. 그래서 저는 초심 그 자체보다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하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이 처음이었기에 저도 많이 서툴고 어설펐고요.

버거운 순간도 많았지만 하루하루 잘 준비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낄 즈음. 저는 결국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1년 여가 넘는 준비과정이 제게는 꽤 스트레스였는지 초심을 하루 앞둔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앞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쓰러질뻔한 상황을 맞이하고 나서야 병원에 갔는데, 입원 권고를 받을 만큼 심각했어요. 그런데 초심 전날까지도 계속되는 준비로 시간이 없어서 약만 처방해달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순간, 아픈 것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 불쌍해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다행히 약으로 잘 버텨 초심을 무사히 끝냈고, 바로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았어요. 전날에 비해 더 늘어난 선생님의 잔소리는 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나서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좋아졌는데, 문득 칼칼한 낙지 김치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라는 당부가 있었지만 며칠 동안 멀건 죽밖에 먹지 못해서 빨간 음식이 그리웠거든요. 결국 ‘그래도 죽이니까 소화는 잘 되지 않을까?’라는 자기 합리화가 시작됐고요.

그 날 이후 저는 고된 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신경성 위 장염이나 위경련에 시달리곤 합니다. 어찌 보면 치열하게 살아낸 인생의 훈장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덕분에 몸이 좋지 않을 때 떠올리는 음식이 생겼고요. 칼칼한 낙지 김치죽은 그렇게 고달픈 제 인생을 달래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치열한 하루 보낸 저를 위해 낙지 김치죽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낙지 김치죽 재료 및 만드는 법

*'집밥 백선생'의 레시피를 참고했습니다.


-재료: 낙지 1마리, 건멸치 10마리, 신김치, 밥, 물, 고춧가루, 간 마늘, 국간장, 액젓, 쪽파, 깨, 김가루, 참기름.


1. 낙지는 데쳐서 잘게 잘라두고, 신김치고 잘게 썰어 준비한다.

2. 건멸치는 내장과 머리를 제거 후 기름 없이 프라이팬에 볶아서 식혀둔다.

3. 식은 멸치를 믹서기에 갈고, 밥 1 공기와 물 2컵을 넣어 다시 갈아준다.

4. 냄비에 밥+물+멸치 간 것과 물 1컵을 넣는다.

5. 썰어둔 신김치, 고춧가루 1숟가락, 간 마늘 1/2숟가락, 국간장 2숟가락, 액젓 2숟가락을 넣고 끓인다.

6. 물이 졸아들면 계속 물을 더 넣고 밥알이 어느 정도 풀어질 때까지 끓인다. 

7. 밥이 퍼지면 손질해둔 낙지를 넣고, 고춧가루 1숟가락을 더 넣는다. 

8. 완성된 낙지 김치죽을 그릇에 담고 고명으로 김가루, 쪽파, 깨, 참기름 등을 올리면 끝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는 제 자신을 너무 괴롭혔던 것 같아요. 대학원 생활에 아르바이트에 학원도 다니며 나름대로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할 거예요.

순간순간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제 몸을 해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그 시간을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한 번쯤은 치열하게 살아봤으니 다신 겪고 싶지 않을 뿐이랄까요? 그런데 또 이렇게 말은 하지만 막상 대충 살아낼 자신은 없어요. 몸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만 열심히 하는 걸로 타협하면 되겠죠?

오늘도 어딘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애쓰지는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노력 그 자체는 좋지만 나의 건강이 더 소중하다는 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 칼칼한 낙지 김치죽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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