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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Sep 16. 2020

[차분(茶分)한 시간, 보리차] 04. 얼그레이

성큼 다가온 가을에 어울리는 차 한 잔

스무살의 이맘때쯤, 공연을 보러 간 대학로에서 우연히 한 티 하우스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입구에는 꽤 많은 종류의 티웨어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는데, 그때는 그것들이 티웨어라는 것도 모르던 때였어요. 화려한 각종 다구들과 홍차 틴 들이 정렬되어 있는 그 모습이 꽤 인상 깊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예쁜 다구들을 보면 없던 소장욕도 생겨나는 것 같아요. 한참 구경하고 자리에 앉아서 많은 종류의 차가 적힌 메뉴판을 보면서 ‘어떤 차를 마셔볼까.’하는 고민끝에 저는 그래도 이름이 가장 익숙했던 ‘얼그레이’를 골랐고, 저의 홍차 입문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홍차’하면 화려한 티웨어들이 가득했던 대학로의 한 티 하우스의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차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는데 티워머 위에 올려진 티포트, 그리고 찻잔까지. 예쁜 꽃 무늬 가득한 그 테이블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화려한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 티웨어들은 그 화려함도 용인할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흔히 홍차에 입문하기 좋은 차로 다즐링과 얼그레이를 꼽는데, 이 두 홍차는 최근에는 웬만한 카페에서도 만날 수 있을 만큼 친숙합니다. 아마 그래서 그 당시에 가장 많이 들어본 얼그레이를 골랐던 게 아닐까 싶어요. 홍차는 크게 스트레이트 티(straight tea)베리에이션 티(variation tea)플레이버리 티(flavory tea)로 나뉘어집니다. 쉽게 말해서 스트레이트 티는 한 원산지의 찻잎만 사용한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즐링, 아삼, 기문 등이 있습니다. 베리에이션 티는 서로 다른 산지의 찻잎을 섞은 것으로 애프터눈티,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오늘의 보리차 주제인 얼그레이는 대표적인 플레이버리 티 인데요, 별도의 가향 처리를 하기 때문에 향차(香茶)라고도 불립니다. 얼그레이를 살펴보기 전에 홍차의 종류는 살펴봐야 할 것 같아 이야기를 꺼내게 됐는데, 이제 다시 얼그레이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얼그레이는 영국에서 개발된 홍차의 한 종류인데, 홍차에 베르가못 향을 첨가해서 은은한 꽃향, 감귤류의 향이 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얼그레이’라는 이름은 1830년대 영국의 찰스 그레이 백작이 즐겨 마셔 그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얼(earl)’이 백작을 뜻한다고 해요. 그 당시 영국 귀족들에게 중국의 홍차가 굉장히 인기가 있어서 그 유사품을 만들려고 했고, 그 결과물이 얼그레이 라고 합니다. 그레이 백작이 중국인 차 장인의 아들을 구했다는 설도 있는데, 진짜인 지는 알 수 없다고 해요. 

얼그레이는 카테킨과 불소 성분을 갖고 있어 충치로부터 치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활성산소를 방지하고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효능도 갖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카페인이 들어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해소하는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또 얼그레이에 첨가되는 베르가못은 아로마 테라피에 종종 사용된다고 하는데 스트레스, 우울증 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차는 이뇨작용과 콜레스테롤을 낮춰줘서 다이어어트에 도움을 준다고 해요. 

하지만 얼그레이는 블렌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50mg 안팎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적당량을 마셔야 합니다. 과도한 양을 마시게 되면 불면증, 두통 등의 카페인 부작용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 홍차가 ‘엄청나게 대중적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심심치 않게 홍차 전문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홍차 브랜드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저는 언젠가 대학로에서 만났던 그 티하우스가 잊혀지지 않는데, ‘예쁘게 잘 포장되어 있는 기억과 함께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보다는 손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도 같긴 한데, 어찌됐든 그 기억이 기분 좋은 추억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저는 그것으로도 만족해요. 다만 한 때 꽤 여럿이던 대학로의 티 전문점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아쉽지만요.

홍차는 카페인을 함유하긴 했지만 커피보다는 훨씬 적은 함량을 갖고 있어서 저는 가끔 커피 대용으로 선택하곤 하는데요. 예쁜 티포트에서 잘 우러난 얼그레이가 깨끗한 찻잔에 담기는 그 순간. 상큼한 향이 주는 그 순간이 참 좋더라고요.

요즘은 차 뿐만 아니라 얼그레이를 활용한 마카롱이나 케이크 등도 쉽게 만날 수 있잖아요. 혹시 아직 홍차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런 케이크 등을 통해서 얼그레이의 향에 익숙해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간을 마치면 저는 따끈한 얼그레이 한 잔과 달큰한 얼그레이 케이크 한 조각으로 하루를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차분(茶分) 한 시간, 보리차'는 보리차처럼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차와 함께 하는 일상과 추억, 더불어 차의 효능과 역사 등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이 주제입니다.


'차분(茶分)한 시간, 보리차'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팟캐스트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381/clip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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