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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Jan 05. 2021

[차분(茶分)한 시간, 보리차] 17. 현미녹차

탕비실 터줏대감 현미녹차 이야기

깔끔한 검정 정장을 입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넘게 일찍 도착했는데 그 낯선 곳에는 시간을 보낼만한 곳이 없어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주변을 살피다가 꽤 시간을 보내게 됐고 이쯤이면 ‘그저 조금 일찍 온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목적지인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꽤나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눈치껏 빈자리에 앉아 제 시간을 기다리던 때 같은 정장 차림이지만 여유 넘쳐 보이는 분이 다가와 종이컵에 든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셨어요. 종이컵엔 현미녹차 티백이 들어있었고, ‘이렇게 고소한 냄새가 났었던가?’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던 공간에서 만났던 그날의 현미녹차는 화려한 다구들로 찻잎을 우려낸 제대로 된 한 잔 못지않게 제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현미녹차를 떠올리면 철은 없지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시절의 하루가 떠올라요. 바로 한 회사의 입사 면접 날이었거든요. 저는 면접 당일에는 굉장히 일찍 일어나서 면접 장소 근처에 가곤 했어요. 다급한 걸 워낙 싫어하기도 하고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가는 게 왠지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근데 이런 습관이 완성된 건 면접 대기실에서 현미녹차 한 잔을 받았던 저 날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면접장 근처 카페에서 차나 커피 한잔을 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던 공간에서 만난 현미녹차는 제게는 꽤 큰 위안이 됐었거든요. 덕분에 면접도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회사 탕비실 쌍두마차는 믹스커피와 현미녹차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덕분에 ‘면접을 기다리며 현미녹차를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차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사무실에서, 특히 거래처와의 미팅에서 현미녹차 한 잔쯤은 드셔 보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저도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께서 커피를 드시지 않는다고 하면 현미녹차 한 잔을 건넸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녹차를 떠올리면 특유의 씁쓸한 맛이 떠오르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런 분들이라면 더더구나 현미녹차를 접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녹차에 볶은 현미를 섞었기 때문에 고소한 향과 맛이 녹차 특유의 씁쓸한 맛을 잡아줘 녹차에 대한 거부감을 확실히 잡아주거든요. 다만 현미녹차 하면 탕비실 한편 정수기 옆, 대용량으로 구매한 현미녹차 티백, 종이컵이 먼저 떠 오르는데 그만큼 익숙하다는 얘기겠죠?





현미녹차를 떠올렸을 때 대부분 한 티백을 생각하실 텐데요, 그 현미녹차는 1988년 동서식품에서 출시해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차를 즐기는 나라 중에서 차와 곡물을 함께 우려 마시는 경우는 사실 드문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찾을 수 있습니다. 현미녹차가 출시되게 된 배경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쓴 맛이 나는 차를 돈 주고 사서 마신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고 이 부분을 고민한 동서식품의 연구원이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구수한 맛을 찾다가 누룽지를 떠올렸고, 그게 현미로 이어져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기사 말미에서 또 재미있는 내용을 찾았는데요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현미녹차를 꾸준히 판매가 되고 있고, 기사가 나온 2018년 기준으로 동서식품 제품이 판매의 82%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2017년 183억 원어치가 판매되었는데 업계에서 추정하기로는 현미녹차의 수요 중 절반 이상이 손님 접대가 많은 사무실용인 것으로 추측했다고 합니다.

이런 현미녹차는 사실 효능면에서는 녹차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녹차에 포함된 성분 중 가장 큰 조명을 받는 ‘카테킨’의 함량을 따져보면 녹차보다 함량이 조금 적다는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해요. 향과 맛이 조금 다른 녹차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잠시 이야기한 ‘카테킨 ’은 녹차의 떫은맛을 내는 주성분인데 이 카테킨은 신진대사를 촉진해 체지방 분해 및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숙취 해소에도 녹차가 좋다고 해요. 그리고 녹차에는 ‘타닌’과 ‘폴리페놀’이란 성분도 있는데,  체내에 쌓인 중금속과 니코틴을 배출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또 비타민C가 함유되어 있어 노화의 원인인 활성화 산소를 없애는 역할을 해 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녹차를 마시고 남은 찌꺼기를 활용해 세안을 하는 것도 녹차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차’라는 게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현미녹차를 떠올리니 무궁무진함 속에서도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현미녹차 티백 말고 좀 다른 현미녹차를 만나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커피빈의 겐마이 차 그린티를 추천하고 싶어요. 겐마이 차는 일본식 현미녹차인데, 현미를 찐 후 볶아서 튀기는 점이 우리의 현미녹차와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커피빈에서는 티백제품으로도 판매하고 있는데, 티백 안을 살펴보면 튀겨져 있는 현미 알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구수하지만 부드러운 녹차를 쉽게 즐길 수 있어서 저는 종종 애용하고 있습니다.

어딜 가도 건강과 면역력이 이슈인 요즘인데, 이럴 때 따뜻한 현미녹차 한잔과 함께  건강을 지키는 한 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분(茶分) 한 시간, 보리차'는 보리차처럼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차와 함께 하는 일상과 추억, 더불어 차의 효능과 역사 등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이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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