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이 소원입니다.

by 브라이언

“단명이 소원입니다.”


특기학교에서 옴서감서 인사를 나누던 사람의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이다.

잠시 벙 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그를 올려다봤을 뿐이다.

까무잡잡한 얼굴, 흐릿한 턱선, 두터운 몸, 그리고 무뎌보이는 인상과 안 어울리는 말끔한 피부와 크고 동그란 눈.

흰자위가 유난히 커서 그런지,

물고기가 겹쳐보였다 - 그중에서도 동태

- 꽁꽁 얼어있는 듯 움직임 없는 그의 모습 때문이겠다.


“왜요?”

내가 물었다.


그는 말보로 골드를 쭈욱 들이키더니

이내 한숨이 한가득 섞인 담배연기를 후 토해냈다.


“아니 뭐 그냥,

굳이 오래 살 이유가 없잖아요.”

그가 답했다.


그의 멍한 동공에서는 영혼의 잔흔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내 눈앞에 서있는 그가 진정 사람인지,

사람의 탈을 쓴 무언가인지 잠시 분간이 안 되었다.

너무 낯선 것을 보아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조선땅에 떨어진 네덜란드인 하멜이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대답은 그에게 조심스레 나아가다 -

이내 추락해버렸다.


나는 그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은,

마치 얼굴 살을 도려내면 너트와 볼트로 뒤덮인 철판이 나올 것만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높은 가을 하늘은 화창한 빛을 보란듯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가 내뱉은 담배연기는 그 채도 높은 빛깔을 온몸으로 받아내다가 이내 서늘한 가을바람에 떨며 푸른빛으로 물들어갔다.

아름다웠다.

춤을 추며 하늘로 피어오르는 연기 뒤로는,

석상같은 얼굴이 뻐끔뻐끔 연기를 연신 삼키고 뱉고 있었다.


담배가 남자의 한숨이라는 말이 있다.

가오 가득한 문장이지만, 나는 그를 보며 이 문장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너무 가슴이 아팠던 것은,

본인의 폐혈관을 구석구석 훑어 터져나오는 담배연기마저 시원한 가을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데,

막상 그는 그자리에 꿈쩍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탁한 눈으로 그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당장 코앞에만 봐도 - 정말 말그대로 코앞에 - 흰 비단옷을 나풀거리는 연기 뭉치가 본인의 매력을 사방으로 떨치고 있는데, 그걸 못 보다니.

그러면서 어찌 감히 단명을 바란다는 말인가.

그를 향한 애매한 비참함이 솟아올랐다.


구름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잠시 숨은 사이에 이때다 싶어 튀어나온 이 푸른 도화지같은 하늘과,

그 하늘이 단 하나의 프레임도 놓치지 않고 뿜어내는 빛깔과,

그에게 구애하듯 춤추는 담배연기와,

그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내 눈빛과,

그의 손에 들린 달달구리한 캔커피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나무 꼭대기의 감을 먹어 잔뜩 들뜬 까치의 울음소리,

이 모든 걸 그는 못 보고 있는데.

어떻게 단명을 원하는 걸까.


나는 영원히 살고싶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보고싶고,

그 어떤 작은 것들도 사랑하고싶다.

나는 내 앞에 앉은 동태같은 차가운 그의 면상까지도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나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자신을 꼬롬하게 쳐다보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픈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나와 그는 타인이기에.

그치만 상상을 안 할 수 없다.

그는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의 삶과 정반대의 것인 단명을 원하는지.

아마 나는 평생 모르겠지.

애초에 나는 그의 이름도 모른다.

특기학교에서 나간다면 아마 평생 마주칠 일이 없을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저 바랄 뿐이다 -

그가 언젠가는,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담배연기를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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