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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u Nov 21. 2020

'어린이 도서관'의 기억 (1)

그곳에 있던 나를, 계속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한 기간은 10년에 가깝다. 한 군데서 2년, 다른 한 군데서 8년 가까이 근무했고 둘 다 구립도서관이었다. 공무원이 아니었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했고, 사서자격증이 없었지만 사서들이 하는 업무를 했다. 반드시 일정 인원은 사서자격증을 갖추어야 하지만 모두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이었다.


규모가 작은 어린이 도서관은 사람들이 보통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 상상하는 곳과는 거리가 멀다. 가령 이곳은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아기를 떼어놓아야 하는 엄마들이 사서에게 아기를 보고 있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 곳이다. 반대로 독서 프로그램에 아이를 들여보낸 보호자가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간 사이, 화장실이 급했던 아이가 대변을 닦아달라고 사서를 큰 소리로 부르곤 하는 곳이다.


도서관마다 운영방식이 다르지만 내가 일했던 도서관을 구성하는 축은 대강 이러했다. 가장 멀리에 구청장이 있었으므로 일상에서 그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중요한 건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나이 지긋한 공무원과 주무관 등의 비교적 젊은 공무원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위탁 운영 업체가 있다. 업체는 어린이를 위한 각종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노하우와 좋은 책을 고를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했다. 업체의 직원으로는 관장이 있고, 사서 및 행정이 있으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강사들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 이용자가 있다. 주 이용자는 어린이와 보호자이며, 어린이와는 상관없이 본인의 책을 빌리러 오는 성인 이용자가 있다. 필요에 따라 가끔 청소년이 드나들며, 동네를 지나다가 호기심에 들러보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서관에는 1년에 두 번 정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크고 유명한 도서관이든 골목 안의 작은 도서관이든 예외는 없는 듯하다. 그들도 엄연한 시민이고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아이들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적절히 대응한 뒤 스스로 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실 이들보다 상대하기 곤란한 경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지랍퍼들이다. 평일 오후에 백팩을 메고 들어와서 한 바퀴 스윽 둘러본 뒤 도서관의 장점 또는 단점을 굳이 나에게 브리핑해주고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사람들.    




하나의 작은 도서관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내가 위치한 좌표는 가장 불리한 쪽에 있었다. 공공기관을 위탁 운영하는 회사는 공무원들 앞에서 명백한 을이다. 그러므로 나는 입사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을에 속했다. 을인 회사와의 근로계약서에는 회사가 갑, 내가 을이라고 되어 있었으니 나는 다시 한 번 을이었다. 


도서관 내의 다른 직원들은 직접적으로 이용자를 상대하는 시간이 비교적 짧았고 공간 또한 따로 사용했다. 나는 업무시간 내내 어린이와 어른 이용자를 직접 대면하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머무는 공간에 이용자가 불쑥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막아주는 역할까지 했으므로, 그들 모두와의 관계에서 또 한 번 을이었다.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커피숍으로 이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료를 들고 들어와서 열람 테이블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지만, 그 정도로 비상식적인 사람에게도 도서관에서 나가 달라고 말하는 건 정말이지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 순간의 황당함을 미처 얼굴에서 털어내지 못한 채 퇴실을 요구할 경우, 그들은 '불친절'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 구청에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도서관을 커피숍으로 이용했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왕 대접을 받아야 할 시민의 기분을 나쁘게 한 죄가 나에게 적용될 뿐. 


나는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가며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저, 여기는 도서관입니다. 음료를 가져와서 말씀을 나누시면 안 되는데요."라고, 작고 다정한 목소리로 -하지만 사색이 된 표정을 도통 감추지 못한 채- 이야기한다.  


그들은 커피를 들고 나가면서 투덜댔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물론 이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감사하게도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정겨운 캐릭터를 갖고 있었고, 자신들이 존중받고 싶은 만큼 직원들을 존중할 줄 아는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저런 컴플레인이 종종 있었지만 이용자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그런 의견들은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더 나은 도서관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더 이상 도서관에서 일하지 않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해결 자체가 불가능한 컴플레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어린이'와 '도서관'. 일면 정답게 섞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더없이 모순적이어서 늘 충돌할 수밖에 없는 단어가 바로 이 둘이다.  


1. 기본적으로 어린이는 오랜 시간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을 수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도 안된다. 어린이는 말하고 싶어 하고, 뛰고 싶어 한다. 어린이집 단짝 친구라도 들어오면 도서관이 떠나가라 반가워한다.  


2. 기본적으로 도서관은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는 곳이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큰 소리로 말하거나 뛰어다닌다면 이용자들은 상당한 정신적, 물리적 방해를 받기 마련이다. '뭐야, 여기 도서관 맞아?'


누군가는 1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누군가는 2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비슷한 나이대의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라도 의견은 갈렸다. 1이 중요한 부모는 직원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정을 억누르는 것을 불쾌해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부모 본인부터 목청 높여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2가 중요한 부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자신의 자녀가 조용한 가운데 집중해서 책에 몰두하기를 원했다.


충돌하는 두 개의 가치는 10년 내내 내 마음을 괴롭혔다. 어느 날은 눈앞의 업무가 바빠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방을 들여다보지 못했더니 누군가 흥분해 다가와선 여기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냐고 화를 냈다. 또 어떤 날은 너무 오랫동안 소음을 만들고 있는 아이의 엄마에게 주의를 주도록 부탁했더니 아이가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할 수 있는 로봇이냐, 내가 외국에서 살다 왔는데 외국에 가면 도서관에서도 아이들이 마음껏 떠들 수 있게 한다,라고 주장하며 씩씩거렸다.


나는 두 경우 모두, 이용자를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 날이면 나 자신이 싫어졌고 근로자이기 이전에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상충하는 극과 극의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자존감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해야만 했던 개인을, 회사 측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보호했어야만 하는 게 옳았다. 그렇지만 회사의 누군가에게 호소해봤자 갑과 을의 구조로 돌아가는 도서관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해내야 하는 가장 중차대한 사명 중 하나는 바로 갑에게 민원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나오지 않게 할 것. 조용히 지낼 것.


사실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였고, 근본적으로는 공간 설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러 욕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게 하려면 애초에 넓은 공간을 마련하여 그것을 용도에 맞게 분리했어야 했다. 


조용히 독서하는 아이를 위한 '나는 마음속으로 책을 읽어요' 방,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는 함께 책을 읽어요' 방, 보호자가 책을 골라 소리 내어 읽어주는 방, 육아로 지친 보호자들이 마음껏 대화를 나누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휴게실, 아이들을 잠시 떼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열람실, 거기다 실내의 독서인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족이 뛰놀 수 있는 널찍한 공원까지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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