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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u Oct 05. 2020

기억의 상자 (1)

기억 에세이 - 1989년 11월


우리는 13평 주공아파트에 살았다. 44동 305호. 어린 시절 외웠던 노래가사를 평생 잊지 않듯 나는 그 숫자를 기억한다. 그 숫자는 내가 생겨나고 밥을 먹고 키가 자라며 사랑을 받은 장소다. 그 숫자를 열고 들어서면, 방 두 칸에 부엌이 하나인 공간이 있었다. 엄마, 아빠, 언니와 내가 살기에 너무나 좁은 집이었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는 나를 보호해줄 가족이 셋이나 있었고, 나는 모든 걸 잘했고, 즐거웠고, 늘 무언가가 되고 싶었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싶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좀 이상한, 희박한 가능성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을 낳으려는 엄마의 마지막 시도로 동생이 생기고 태어났을 때, 나는 열살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없으면 대가 끊긴다고 말했다. 대가 끊긴다고? 그 말은 좀 의아했다. 대라는 것은, 끊기면 안 되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우리 가족의 삶에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어난 동생은 딸이었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아쉬워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본 기억은 있다. 미안해할 만한 일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조금은 화가 났었다. 어쨌든 1989년 11월의 그 겨울날, 정확히 내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난 동생이 담요에 싸여 집으로 왔을 때, 나는 내 동생의 얼굴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잠들어 있는 그 아기를 내려다봤다. 


1989년, 아기까지 우리는 다섯 식구가 되었다. 엄마는 좁은 집을 조금이라도 넓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어두운 색 방문을 비롯한 집안 곳곳을 밝게 페인트칠했다. 그리고 좁은 베란다를 개조해서 거기다 우리들의 책상을 놓았다. 방이 3개가 됐네! 하고 나는 아마도 기뻐했겠지. 친구에게는 우리 집도 방이 3개야, 라며 짐짓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해두지 않았을까. 책상이 있는 베란다에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공간은 언니만의 공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부터 나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90년대가 시작되자, 밤이면 불을 꺼두고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노래가 정말 좋다는 생각, 행복하다는 생각, 우리집이 조금은 가난한 것 같다는 생각, 그러므로 나는 돈을 많이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라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고, 나는 아마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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