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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u Oct 06. 2020

기억의 상자 (2)

기억 에세이 - 2018년 7월 


도서관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곧바로 걸은 뒤 왼쪽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여유 있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일을 도통 잘하지 못했던 나는 거의 매일 급하게 걷거나 뛰었다. 내가 한숨을 돌리고 나면, 먼저 와서 도서관을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아침의 도서관은 조용했다. 급한 일이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작고 아담한 그 장소에는 내가 직접 골라서 들여놓은 책들이 많았다. 이용자가 없는 아침의 도서관은 나만을 위해 존재했다. 커다란 창문을 열어놓으면 새소리가 들려왔다. 바람과 햇빛이 들어왔다. 7월이면 마당의 배롱나무꽃이 거짓말처럼 활짝 피었다. 누군가 오페라 가수처럼 진지하고 큰 목소리로 불러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를 연상시키던, 몇 골목 떨어진 어딘가에서 종종 들려오던 노랫소리, 때로는 정체 모를 풀벌레 소리까지. 나는 직장의 내 자리에 앉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었다. 그곳은 나에게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몇몇 이용자가 나의 평화와는 상관없이 도서관을 이용하러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에서 쨍그랑 무언가가 깨졌다. 깨지자마자 나는 안녕하세요, 차분한 톤으로 인사했다. 보호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면 나는 조금 더 친절해야 했다. 어쨌든 그곳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이었으니까. 


나는 아이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일을 시작했었고, 그 마음은 오래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도 함께 싫어했다. 도서관에서 일하기 전의 나는 분당의 어느 유명한 영어학원에서 학부모를 상대했었다. 그들에 관해 기억하는 바라면, 그들은 집단적으로 이상한 광기에 홀려 있는 사람들이었다. 노골적으로 사람을 의심했고, 컴플레인을 위한 컴플레인을 했으며, 자식을 숭배하면서도 자식 때문에 불행해했다. 


어떤 이는 빨리 셔틀버스 시간표를 내놓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어떤 이는 교실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다가 우리 아이가 저렇게 집중을 못하는지 몰랐다며 눈물을 줄줄 흘리더니 그 자리에서 학원비를 환불해갔다. 학원의 그 누구도 아이에게 그 정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아이는 그저 보통의 개구쟁이였다. 어떤 이는 학부모 모임이 명절 이전의 어느 날로 정해지자, 그것이 한 명이라도 덜 모이게 해 컴플레인을 안 듣기 위한 책략이라는,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논리로 우리를 몰아갔다. 나는 아이 또는 아이와 엄마가 등장하는 TV광고가 나오면 단지 그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었고, 채널을 돌렸다.


도서관에 드나드는 엄마들은 대부분 점잖고 따뜻했다. 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그 동네 사람들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었으나, 돌이켜보면 오히려 나에게 여유와 성장을 제공한 쪽은 그들이었다. 그것은 아주 조금씩, 몇 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였다. 사람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를 다하는 이용자들의 얼굴을 꾸준히 마주해오던 어느 날, 나에게 엄마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엄마가 된 '여자'들을 향한 마음이었다. 시간이 아주 훌륭하게 축적된 셈이었다. 그들에게 꼭 필요할 것이지만 아이를 키우느라 스스로 찾아내지 못한 좋은 책들을 들여놓고 싶었다. 그들이 무언가 귀한 것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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