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끝의 감사와 행복
이탈리아에서 2주간 머무르면서 거쳐간 6도시 중에서 아씨시는 가장 많은 감정을 일깨워 준 도시이다. 많은 것을 얻어 간 곳이었어서일까, 아씨시는 마을로 들어가는 그 길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느즈막한 오후에 도착한 아씨시는 로마의 지하철역만한 크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완전히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차역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플랫폼도 3개인가, 5개밖에 안되었던 것같고 역내에는 카페 하나, 매점 하나가 다였다. 아씨시의 기차역에서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보통의 여행자들은 C번 버스를 타는데, 매점에서(한국인이 많이 와서 그런지, 버스 티켓 파는 곳을 한국어로 큼직하게 써놨다!)티켓을 끊고 나 역시 C번을 기다렸다. 내가 주말에 가서 그럴 수도 있지만, 버스 간격에 비해 타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짐을 들고 타는 게 꽤 불편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할 것같다. 치안이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고 조금 오래 타야하기 때문에 자리를 못 잡거나 빽빽한 사람들 틈에 끼어 있으려니 땀이 송글송글 맺히더라. 일행이 있다면 돈을 나누어 내서 택시를 타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다. 한참을 버스를 기다리다 겨우 타고, 또 한참을 버스를 타고 길을 올랐다. 중간에 교통정리가 필요한 일이 생겼는지 버스가 길에서 정차한 10여분까지 합해서 40분은 타고 오른 기분이었다.
아씨시의 숙소는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한 델질리오 수녀원 순례자의 집으로 잡았다.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씨시에 대해 찾아볼 때 그 곳이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실컷 느끼고 싶었다. 한국인 수녀님이 계시다고 들어서 인사도 드리고 얘기도 듣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광지 접근성과 안전성이 좋은데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에 아씨시 숙소를 그곳으로 잡았다.
순례자의 집으로 가는 방법은 예약을 받는 수녀님의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설명에 나온대로 종점인 마테오티 정류장에도 잘 내렸고, 꼬무네 광장까지도, 수녀님이 말하신 주의점도 잘 지키며 그럭저럭 잘 찾아갔는데... 도대체 13번지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전까지 길찾기를 전부 구글맵에 의존해서 다녔던 터라(로마에서 하루 빼고) 번지수로 길을 찾는 것에 익숙지 못했다. 그렇기에 13번지를 어떻게 알아봐야되는지도 하나도 모른채 그저 수녀원 간판만 한참을 찾아 같은 길을 왔다갔다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앞까지는 물론이요, 성당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길까지 몇 번을 헤맸지만 나도 물어본 남들도 다 수녀원을 알지 못했다. 한 끼도 못먹은 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속 왔다갔다했다. 모두 즐겁고 평화로운 관광객들 사이에서 혼자 길잃은 이방인이 되어 혼란스러워했다. 와 정말 이렇게 되면 다른 숙소를 찾아야 되는 건가싶을 무렵, 다행히도 한 신부님 덕분에 꽃이 많은 가게 맞은 편이라는 정보를 얻고 찾아가서야 13번지를 찾을 수 있었다.(도대체 왜 구글맵을 안 켠거니??) 네모의 손바닥만한 팻말에 쓰인 13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하지만 문 앞에 와서도 숙소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13번지가 도미토리 숙소가 있는 곳인데, 그 안에 계신 수녀님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실 뿐더러 예약 관리를 해보신 분은 아니셨던 것같다. 수녀님은 13B번지로 가야한다며 친히 그 근처까지 나를 데려가셨고, 나는 내가 잘못 읽었나보다 하며 이제는 숙소에 들어갈 수 있겠지 하며 기대했다.
조심스레 13B번지의 벨을 울리고 문이 열렸는데, 드디어 영어를 하시는 수녀님이 나오셨다! 드디어 돌덩이같은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나 했지만... 당연히 수녀님께서는 여기가 아니라며 13번지로 가야한다고 돌려보내셨다... 이 때 이런 상황들이 너무 억울하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정말 울 뻔 했다. 세상 억울한 표정과 거지같은 몰골로 여기로 가래서 온 거라고 말씀드리니, 수녀님(수녀님의 세례명은 '모니카'셨다)이 다시 나를 이끌고 13번지로 데려가셨다.
그래. 13번지가 맞았다. 나를 데려다주신 모니카 수녀님은 방금 전 13B로 나를 보내신 수녀님이 영어를 잘 못하셔서 오해하신 것같다고 상황을 풀어주셨다. 샤워한 듯 온 몸이 땀이었고 배고플 기력도 없이 지쳤다. 속으로 엄청 울컥하는 게 올라왔는데, 모니카 수녀님은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신건지 아님 그냥 내가 너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어서인지 허허 웃으시며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배낭도 풀고 있으라고 해주시고 앉아서 기다려도 된다고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서 마음을, 그리고 배낭과 엉덩이를 편히 놓을 수 있었다.
모니카 수녀님이 방을 안내해주시고 들어서자, 무슨 리조트같은 뷰의 마당이 있는 방이 나와 놀랐다. 베란다처럼 보이는 공간에 건조대도 있었고, 5인실에 화장실도 두 개였다. 안그래도 넓은 방인데 나 포함 2명만 자는 날이어서 더 넓고 깨끗하고 조용했다. 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확인하니 기차에서 내린지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숙소까지 참 긴 여정이었구나.. 그래도 어찌됐건 방에 들어왔다고, 순식간에 안정감이 몰려들었다.
이리저리 치이고 돌아다니는 동안 보조가방 안에서 베드버그 스프레이 뚜껑이 열려버렸는지 가방이 축축했다. 페르세포네북스에서 받은 카탈로그가 들어있었는데 펼칠 수 없을만큼 젖어버려서 결국 버려야했다.보조가방 자체를 아예 빨아버렸다. 짐 정리를 대충 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뜨거운 물을 쬐는 순간, 세상에!! 자꾸만 감사하는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었구나, 하고 속으로 계속 감탄했다. 땀에 찌든 머리카락, 그 전날 입은 햇빛화상으로 점점 껍질이 일어난 팔뚝, 두시간 가까이 배낭을 메느라 어깨에 주륵주륵 그어진 생채기 몇 줄을 되돌아보면서 눈물이 날 것같은 기분을 애써 삼켰다. 이 때 이후에도 다른 여행지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 때는 많았지만, 어떤 샤워보다도 충만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인생 최고로 감동적인 샤워였다.ㅋㅋㅋㅋㅋ
입고 온 것들을 빨래하고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수녀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전 스프, 식전 빵, 샐러드, 메인요리, 와인, 후식 과일까지 소박하지만 형식을 차린 식사를 아시안 수녀님께서 하나하나 가져다 주셨다. 그제서야 먹는 첫 끼는 너무 맛있었다. 다음날도 수녀원 저녁을 신청해서 먹었었는데, 메인요리만 달랐지만 모두 다 싱싱하고 맛있었다. 나중에 누군가 이탈리아 음식을 물었을 때, 물어보는 사람마다 가정식을 찾아 먹어보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정갈한 분위기에서 혼자 씩씩하게 다 긁어먹고 수녀님께 칭찬도 받았다. 보통은 도미토리에서 몇 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테이블에 저 와인병 하나를 주시는 것같았는데, 한 명만 저녁을 신청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신건지 새 와인병 하나를 내 몫으로 주셨다. 아무리 내가 술을 좋아해도 저 한 병을 이 자리에서 다 없애기는 힘들 것 같아서(남기기는 싫으니까) 어쩔까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이탈리안 부부가 왠지 와인을 남길 것 같은 걸 발견했다. 영어를 하시는 수녀님께 부탁드려 같이 쉐어할 수 있냐 물어보니, 흔쾌히 오케이하시더니 그냥 바로 병을 주셨다. 많이는 안 마시고 두잔반 정도 마셨는데, 그 와인이 이탈리아에서 마신 것 중 제일 맛있었다고 기억한다.
저녁을 먹고 바로 방으로 돌아와서 다른 한국인 여행객 한 분과 인사했다. 이탈리아에 와서부터 며칠동안은 한국 사람과 대화하지 못했기도 하고,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피곤해보이시는 분께 한참 말을 걸어댔다. 머릿속에서 '이제 그만해'하는 말이 들리는 데도 입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도 너무나 친절히 받아주시고 내 햇빛화상을 보시더니 스테로이드(?) 연고까지 빌려주셨다. 감사히 얻어바르고(정말 효과가 있었다!)나서는 런던 마트에서 기어코 하나 들고 온 작은 컵라면까지 하나 신나게 끓여먹고 잤다. 고생이었지만 감사로 가득차 마무리된 하루를 안고.
+이제 델질리오 수녀원에서 도르미토리오 숙소를 더는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싱글룸, 2인실은 이용이 가능하나 한국인 수녀님이 예약을 관리하시진 않으니 주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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