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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Aug 15. 2024

미워요

아이 킬드 마이 마더



4

언제 이 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올래?

/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





미움 고백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고 엄마를 죽도록 사랑했다. 이 고백은 종종 나를 괴물로 만들기도 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매번 마음속으로 엄마를 죽였고 아들을 죽였고 사랑을 죽였으며 당신과 함께였던 나의 모든 어제를 죽이기도 했다. 이건 사랑 고백이 아닌 미움 고백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엄마는 술에 취해 계단 아래 드러누워 있었다. 낡은 독립주택 이층에 세 들어 살았던 우리는 무릎이 상할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렸고 술집에 다니던 엄마는 계단을 내려가는 출근길보다 계단을 오르는 퇴근길에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는 내 인생에 있어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게 만든 사고 중 하나인데 꼭 남겨야만 하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랑만큼이나 미움 역시도 각별했던 우리였으니. 그러니 남겨야겠다고.


작은 소동이 있었다. 급식소 앞을 서성이는 나를 보며 친구가 물었다. 거기서 뭐해. 우물쭈물거리던 나는 급식소 문 앞에 붙어있는 내 이름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것 때문에. 급식비 미납으로 밥을 먹을 수 없는 이름들. 거기에 내가 있었다. 학교가 어쩜 그리 잔인했을까. 지금도 그런가. 가끔은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의심해 보기도 한다. 중학교 일기에 남아있는 그날 하루는 그저 가난이 싫어서 연필로 나를 더 깊게 긁고 할퀴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꾸민 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내 이름은 거기 붙어있었고 내 이름 세 글자가 그 어느 때보다 싫었다. 친구는 머쓱하게 시선을 피하다 급식소로 들어갔다. 나는 세차게 교실로 달렸고 계단을 오르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정강이 한쪽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지금도 멍은 흉터로 남아있고 그걸 보고 있으면 그날의 수치심이 떠올라 나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책상에 엎드려 나는 묵음으로 저주했다.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싫다고.


아빠의 월급날이면 엄마와 나는 아빠의 퇴근길 주변에 숨어 아빠를 기다렸다. 관광지 조경을 가꾸던 아빠는 퇴근길에 사장님 집 앞으로 트럭을 댔다. 작은 연못이 있던 그 궁궐 같은 집에 트럭을 대고 양피지 봉투에 월급을 타쓰던 아빠는 곧장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다. 도박에 빠진 아빠는 어딘가로 화투를 치러 갔고, 돈을 따도 술을 마시고 돈을 잃어도 술을 마셨다. 그런 아빠에게 질려 엄마는 술집으로 돈을 벌러 나갔고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남보다 못한 사이로 갈라섰다. 어디 돈 나올 곳이 있나 싶으면 서로를 쫓고 피하는 먹잇감과 사냥꾼으로 둔갑하는 그런 사이였다. 확률은 반반이었다. 운 좋게 사장님 집을 빠져나온 아빠를 발견하면 엄마는 한달음에 쫓아가 월급봉투를 가로챘고 절반을 꺼내 엄마의 가방에, 남은 절반의 절반을 나에게 건넸다. 두툼한 봉투는 홀쭉해져 아빠의 손에 쥐어졌고 셋은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로 들어섰다. 일하는 도중에 빠져나온 엄마는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일터로 향했고 아빠는 여느때처럼 화투를 치러 떠났으며 길 한복판에 남겨진 나는 주로 문구사로 향했다. 인천문화당이라는 대형 문구사였는데 나는 그곳의 냄새를 좋아했다. 새것에서 나는 굉장히 화학적인 냄새였다. 오래된 책들을 무덤처럼 쌓아둔 낡은 책방에서 나는 냄새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냄새였다. 말랑말랑한 지우개 몇 개를 골라잡으면서 내일은 급식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굳이 입 밖으로 꺼내 말했다. 돈이 잠시나마 가려준 불행에 안도하면서, 엄마를 저주했던 학교의 비극을 끝내면서 몇번이고 말했다.


나는 나의 비극을 거의 모두 엄마에게로 전가시켰다. 왜 그랬을까. 아빠에게는 무엇도 떠넘기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비극이 생기면 나는 항상 엄마를 먼저 떠올렸고 엄마를 먼저 불렀으며 엄마를 먼저 찾았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아빠의 퇴근길이 아닌 엄마의 출근길을 따랐다. 아빠의 돈을 받는 일도 엄마에게 말하면 받을 수 있었고 아빠의 책임을 따지는 일도 엄마에게 따지면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나의 위태로운 피붙이의 끈을 겨우 묶어낸 매듭이었고, 그래서 나의 미움은 모두 엄마에게로 향했다. 결국 엄마는 나로 인해 아파했다. 내 모든 미움을 감당해야 했으니 엄마 가슴에 박힌 못 들은 내 미움과 비례했다.


잘 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꾸역꾸역 하며 버틴 깊은 밤, 조용한 독서실 안으로 굵은 빗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새 학용품으로 들어찬 가방을 닫으면서 집에 갈 채비를 하던 나는 우산이 없다는 것도 잊은 채 독서실 밖을 나섰고 세찬 빗줄기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행여 새것들이 비에 젖을까 가방을 꼭 감싼 채로 물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어두운 골목길을 걸었다. 교복 마이부터 셔츠, 바지와 속옷까지 모두 젖은 나는 몸이 무거워져 잠시 비를 피하러 편의점 차양 앞에 멈춰섰다. 편의점 안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던 아이들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본 게 기억이 난다. 비를 맞는 일쯤이야 비극에 속하지 않으니 무시할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나에게 오히려 낭만적인 무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빗줄기는 나에게 영화 [싱잉 인 더 레인]이었고 [쉘부르의 우산]이었으니 비극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머리카락에 머금은 물기를 털어내고 소매 주변부 물기를 쭉 짜내고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열쇠를 꺼내려고 가방 앞주머니를 뒤지는데 빗물이 가득 고인 엄마의 구두 한 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난 느꼈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비극이 지금 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는걸.


이층으로 들어서는 좁다란 계단 바로 밑에 엄마가 있었다. 그곳에 드러누워 비를 이불 삼아 덮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숨결을 탄 술 냄새를 맡고서 무력감에 휩싸인 채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를 등에 업고 계단을 오르기엔 나는 깡마르고 덜자란 중학생이었으니까. 혹시라도 집에 아빠가 있을까 뛰어 들어가 봤지만 어김없이 집은 비어 있었다. 계단은 평소대로 가팔랐고 비는 평소와 달리 세차게 쏟아졌다. 따갑도록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마를 깨우는 게 다였다. 나는 엄마의 어깨를 뒤흔들며 일어나라 소리쳤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들을까 봐 빗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힐 만큼 작게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았다. 만취한 엄마를 동네방네 소문내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그때 그냥 엄마도 죽고 나도 죽었으면 싶었다. 잔인한 마음만이 가득 들어차 온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감싸안고서 엄마 곁에 누웠다. 죽도록 미웠던 엄마인데 엄마를 끌어안고 그 품에 안겼다. 순간 내 머리 위로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가로막는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엄마의 양손을 붙들고 계단을 한 칸 한 칸을 올라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조금이나마 반응하는 엄마의 팔에 온 힘을 싣고서 나는 계단을 올랐다. 엄마의 팔에 무리가 갈까 봐 한 계단은 어깨를 붙들고 한 계단은 허리를 붙들고 한 계단은 다리를 붙들고서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을 올랐다. 멍든 정강이가 계단에 찍히고 팔꿈치가 난간에 쓸리면서도 마스카라와 립스틱이 빗물에 번진 엄마 얼굴이 다치지 않도록 아등바등 계단을 올랐다. 그러면서 난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계속해서 엄마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이 비극이 끝나고 나면 두 번 다신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며 한 계단마다 엄마를 할퀴고 찌르며 죽여갔다. 현관문 앞에 다다른 뒤 비에 젖은 엄마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히면서 나는 엄마의 아들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잠깐이지만 그날 나는 엄마를 버렸다. 잔인하리만치 무력했던 중학생 아들. 그게 바로 나였다.

늦은 아침 겨우 눈을 뜬 엄마가 힘겨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학교는?

나는 아들이 아닌듯 잔인하게 엄마에게 물었다. 

이러려고 나를 낳았어?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서 엄마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상처를 쏟아낸 뒤 아들이 묻는다.

내가 오늘 죽으면 어떡할 거야?

그러자 아들이 듣지 못하게 엄마가 답한다.

그럼 나는 내일 죽을 거야.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들의 일인 것처럼 굴 때가 있었다. 미움으로 들어찬 나를 뱉어낼 데라고는 엄마밖에 없다는 듯. 그러면 엄마는 포효하며 울기도 했고 두 번 다시는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엄마라지만 나는 엄마에게 비밀이 많았고 그런 와중에도 나는 엄마를 죽도록 사랑했다. 나는 엄마에게 이  비극을 들려주지 않았고 한참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병원에서 '그때'를 생략한 채 정말 미안했다며 여러 번 사과를 했다. 그러면 나는 얘기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할 테니 엄마는 고맙다고 하자고. 그 뒤로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엄마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하루만 더 미안하다 말하고 싶고 하루만 더 고맙다 말하고 싶은 듯 죽도록 미워하며 죽도록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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