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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Aug 14. 2024

서있기

그래비티



3

내가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_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된다.

시간을 내주지 않는 사람은 너에게 그만큼 관심이 없는 거니까 그 사람은 잊고 자신에게 집중하라.

이게 '나'에게 말고 '너'에게 적용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면 두렵다.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간다는 문장이니까. 그게 아닌 사람들도 있는데. 진단이 너무 쉽다. 일주일간 엄마의 항암 스케줄에 휴무를 맞추다 보면 내게 여유 시간이라고는 밤 깊은 새벽이 전부다. 그땐 누군가에게 연락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미 좁은 인간관계라 카카오톡의 스크롤을 얼마 내리지도 않아 이름의 밑바닥에 닿고 만다. 엄마의 항암 스케줄은 이 주 간격으로 3일 길게는 일주일간 진행된다. 그렇다 보니 내 휴무를 온전히 병원에 맡겨야만 입퇴원 수속을 함께 밟고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탈하게, 정확하게는 내 마음 편히 마무리할 수 있다.


30차에 접어든 엄마의 항암은 무뎌졌다. 생의 연장 기능으로만 적용될 뿐 더이상 호전은 없더라. 나조차도 지쳐가는데 엄마는 어떻겠는가. 항시 손발이 저린 엄마의 고통은 더 커져만 갔고 검붉게 물든 손톱을 보며 다 뜯어내버리고 싶다는 하소연도 무르고 무감각한 실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입원 수속이 무탈하게 진행되면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 나는 엄마를 병원에 두고 또다시 일을 하러 갔다. 이건 그때 내 전부였다. 그렇게 전부인 걸 전부 해내고 해내다 보면 몇차례 엄마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다. 그때면 엄마는 보고 싶다며 영상통화를 걸었고, 가쁜 숨을 내뱉으며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사랑과 고통에 대해 말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듣다가 이 또한 지나갈 거라며 엄마를 흘렸다. 그저 괜찮아질 거라는 주문을 걸면서 그렇게 엄마를 비웠다. 반나절이 흐른 뒤에야 다시 평온한 숨을 내쉬며 엄마는 괜찮다고, 이제 괜찮다고 전화를 했다. 나도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은 걸까. 괜찮아진 게 맞을까. 엄마의 퇴원 수속은 계속해서 늦어졌고 나는 예정된 비행기 표를 취소해 급하게 다시 비행기 표를 예매해야 했다. 엄마의 퇴원 날짜 스케줄을 확인해 보니 오픈이었다. 엄마의 퇴원은 오전에 진행된다. 그럼 난 갈 수가 없었다. 다른 암 환자들과 달리 엄마는 다리가 불편해 항암치료 후에는 더 못 걷게 된다. 내 평생의 소원이 있다면 엄마가 달리는 모습을 한 번쯤은, 아니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인가 보다. 홀로 세상을 걷는  엄마를 보는 일이 왜 이리도 힘든 걸까. 모두가 너무나도 잘 하는 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을 나는 왜 볼 수 없는 걸까. 그 어떤 영화보다 아름다웠을 그 모습을.

나는 또다시 친구와의 약속을, 예매해둔 영화를, 그리고 퇴근 후 홀로 마시려 했던 술을 취소했다. 그리고 내 퇴근 시간에 맞춰 홀로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걱정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내 두 뺨을 몇번이고 후려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쉬었던 하루가 있었던가. 온전히 나를 위해 쉬었던 단 하루가 있었던가. 휴무에는 엄마의 병원 스케줄을 함께 했고 어쩌다 연장 없는 근무가 있었던 날에는 겨우겨우 연락이 닿은 친구들과 술 한잔했다.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는 인스타그램의 조언은 그렇게 나를 할퀴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연락을 못하는 게 아니라 여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생각하지 않아서 연락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연락을 놓친 거일 수도 있는데. 내가 엄마를 돌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못 돌보는 상황이 생기는 것처럼.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지만 내 몸은 하나고 내 마음도 하나고 내 정신도 하나라 다 따라주지 못한 것인데. 엄마의 병원 스케줄이 내 스케줄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시간에 맞춰 내 소중한 사람들도 시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아. 모두가 이렇게 어긋나고 틀어져서 결국 난 항상 혼자 남아 해내지 못한 일에, 만나지 못한 약속에, 전하지 못한 진심에 슬퍼만 하고 있잖아.   


퇴근하고 집에서 내내 울었다. 한동안 이런 적 없었는데. 감정이 메말라 굳어 파삭파삭해졌을 즘 알았다. 난 정말 감정적인 사람인데 매일매일 감정을 잊고 살아왔구나. 슬픈 일 힘든 일 아픈 일뿐이어도 슬픈 감정 힘든 감정 아픈 감정 온전히 겪고 느끼는 나의 생인데 지금은 무시해버린 채 그냥 잊고 살려고만 했구나. 메마른 게 아니라 표면이 굳어 단단해져버렸구나. 그 표면을 걷어내니 이렇게 눈물이 차올라 쏟아지는구나. 그렇게 몇 시간을 울었다. 아무것도 켜지 않고 틀지 않은 캄캄한 방 안에서 그렇게 몇 시간을 울었다. 너무 지친다, 너무 슬프다, 너무 외롭다,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하면서. 그렇게 울고 나면 좀 개운해졌는데 이제 그 개운함 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내가 많이 상해버렸다.  그래서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람들 그냥 내버려 두자고. 뭐 하러 신경 써. 나 역시도 내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다시 또 회자정리가 되는 시간이었다. 눈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람들 역시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됐다. 이제 빠져나갈 사람 얼마 없더라. 내 마음 깊숙하게 박혀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은진이와 수빈이는 세계 일주를 잘 해내고 있었고 수민누나와 진경이는 시시콜콜한 하루를 나에게 공유하며 웃고 있었다. 상훈이와 대영이는 언제 만나줄 거냐며 투정을 부렸고 선우는 애슐리 밥값은 25,900원이란다. 수연이는 갈비뼈 때문에 고생이라 했고 예진이는 건강검진 결과가 좋아 무적이라 했다. 요 며칠간 받은 연락들. 이렇게나 따스한 연락들이 많았다.


퉁퉁 부은 눈으로 넷플릭스를 틀고 아무 영화나 재생을 했다. 영화 [그래비티]가 나왔다. (이럴 때 좀 무섭다. 나에게 필요한 영화를 틀어줄 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건 사람들이 아닌 결국 스마트폰과 이런 OTT 서비스인 것만 같아서.) 스톤 박사의 모습은 어딘가 나와 닮아있었고 치료에 지친 엄마와 닮아있었다. 아무 감정 없이 감각 없이 그저 버티고 견디고 있는 거. 그렇게 계속 보다 보니 스톤 박사는 나름 잘 견디고 있던 거구나. 그리고 코왈스키 박사도 위로와 응원을 참 잘 하는구나. 그럼 엄마는 스톤 박사고 나는 코왈스키 박사인 것 같네. 어찌 됐건 나는 끝까지 엄마를 응원하고 위로할 테니까 저렇게 포근한 감정을 담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엄마 곁에 있자  생각했다. 그럼 엄마는 좀 더 오래 내 곁에서 두 다리로 세상을 걷겠지. 그래. 분명 나아지고 있다. 병원에 어떻게 다닐까 걱정하던 엄마는 이제 혼자서도 제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그럼 나는 서울에 도착한 엄마를 만나 병원에 가고 입원 전에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면 된다. 퇴원할 때도 내가 서울 공항까지 잘 바래다주면 엄마는 혼자서 제주에 있는 집까지 잘 당도한다. 달리는 모습은 보지 못하더라도 엄마는 혼자서도 잘 걷고 있다. 내가 뒤에서 잘 지켜봐 주기만 한다면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영화 같은 장면을 안겨줄 거다. 지금은 그걸로 됐다.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 영화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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