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신랑의 카톡 프사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가족 5명의 얼굴이 모두 나온 가족사진이었고 신랑은 사업상 이유로 카톡에 본명을 그대로 올려두었기 때문에 그 사기꾼도 우리 사진과 신랑 이름을 그대로 활용해 단체 채팅방에서 사기 행각을 벌인다는 제보(?)였다. 워낙 험한 세상이라 난 그 DM 조차도 사기인 것 같아서이상하다고 느껴서 끝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게임 관련 사기라고 하는데신랑과 나는 잘 모르는 영역이라 처음엔 설명을 들었어도 이해가 안 갔다. 이걸로 대체 무슨 사기를 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또 같은 이유로 신랑에게 당신 사진과 이름을 누군가 나쁘게 쓰고 있다는 블로그 댓글을 받았고 진짜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됐다.
게임 관련 단톡방에서 사람들을 모아 도박성 게임을 유도하고 이 게임을 통해 매일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 게임을 하며 오늘은 000만 원을 모았다고 말하고 금액 리스트업을 해서 보여주면서 현재 누적 금액까지 계속 각인시킨다. 실제 만져본 적 없는 돈이지만 온라인상의 그 돈이 꽤나 쌓였을 무렵, 피해자가 이제는 그 돈을 인출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담당자는 세금 문제 때문에 바로 인출이 안되니 세금 해당금만 입금하면 바로 이체해 주겠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1000만 원을 벌었는데 세금 200만 원 정도만 입금해 주면 나머지 바로 보내줄게라는 식이다. 피해자는 어차피 없던 돈을 공짜로 벌게 된 거라 일부 세금이라도 보내주고 전체 금액을 받는 게 이득이니 바로 오케이 하게 된다. 그렇게 알려준 계좌로 세금이라고 말하는 금액을 보내면 갑자기 모든 연락처가 끊기고 차단되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사기를 당한 거다.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일단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허무맹랑하고 황당하지만 사기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뭐에 홀린 듯 피해를 입었겠지 싶다. 피해 규모도 작게는 몇백만 원 크게는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해서 두 눈을 의심했다. 이 사기행각 중에 피해자를 컨텍해서 카톡으로 서로 대화하며 상담해 주는 실장 같은 역할을 하는 놈하나가 바로 우리 가족사진과 신랑 이름, 얼굴을 그대로 걸고 사기를 친다는 거다. 피해자 말로는 솔직히 가족사진에서애들 얼굴까지 다 나오는데 나쁜 사람일까 싶어서 더 신뢰가 갈 수밖에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사기인 걸 알고 잡으려고 그 사진을 검색하다 보니 신랑 블로그와 인스타 까지 알게 됐고, 그놈인가 싶었지만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도용당한 사실을 알려주려고 연락했던 것이었다.
# 나도 모르게 철저히 조작된 인생에서
영화 <조작된 도시>는 하루아침에 살인범이 된 주인공 '권유'의 이야기다. 결론으로 보자면 해피엔딩이지만 영화 보는 내내 찝찝하고 답답했다. 단순한 킬링타임용 액션 드라마 일 줄 알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그리 쉽게 즐길 수는 없었다. 권력의 추악함과 언제든 권력자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도구로 쓰이는 일반 사람들의 일상까지 영화인 줄 알지만 보면서도 괴로웠다.
특히나 요즘 딥페이크로 떠들썩한 마당에 영화에서 나오는 기술적 요소들이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법한 것들이라 더 거북했다. 초중고 나이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의 사진을 딥페이크로 더러운 성인물처럼 만들어버리던데 만약에 내 딸들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제정신일 수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의 엄마처럼 반드시 진실을 바로 잡고자, 내 새끼를 살리고자 뭔 짓인들 못할까 싶다. 2017년작인데 감독이나 작가는 7년 후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불쾌한 일이 영화 속 상상이나 컨셉이 아닌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뤼팽>에서도 목소리와 얼굴을 조작하고 교묘하게 이용해서 진실을 아주 손쉽게 덮어버리는 에피소드를 많이 봐왔기에 더더욱 짜증이 났다.
주인공의 진실을 위해 게임상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던 대장을 현실에서 역으로 지켜준다는 것이 나름의 인류애와 주된 감동 포인트였지만, 과연 현실에서 이 정도로 남을 위해 헌신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철저히 조작된 인생으로 살아가야만 할 때는 결국 혼자 힘으로 넘을 수 없고 내가 그간 베풀었던 온정을 오롯이 나에게 돌려줄 수 있는 주변인이 있어야만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고 실익을 따져대는 이 세상에서 그런 미덕을 보일 지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정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본다.
# 사기꾼은 있는데 신고는 못한다고요?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그 사기꾼의 만행을 듣고 또 다른 피해자가 계속 생길 것 같아 신랑과 경찰서에 직접 방문했다.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캡쳐본과 우리가 실제로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들을 갖고 가서 보여드리고 전달받은 피해 사실들을 쭉 설명했다. 담담히 들으시던 경찰 담당자의 결론은 이거였다.
"그 사람이 선생님의 실명과 사진을 도용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로 인해 선생님이 직접적인, 금전적인 피해를 입어야만 신고 접수가 가능합니다. 지금 실제로 피해 입으신 건 없잖아요. 안타깝게도 현재 제도상은 딱히 하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잡혔을 때라면 증인으로 나오셔서 이 사람이 내 이름을 도용한 부분이 있고 나는 실제로 그런 일을 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시는 정도가 가능합니다."
사기꾼은 있는데 신고는 못 한다. 나쁜 놈인 건 알지만 벌을 내릴 수가 없다. 내가 피해 입은 건 맞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피해여야 한다. 우리 가족사진과 신랑 이름, 얼굴까지 팔면서 자기인 듯 행세를 떨고 심지어 그걸 이용해 사기를 치고 있지만 그걸 알고도 당사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조작된 사실들을 알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법이 없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금전적이고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기꾼 때문에 돈도 잃고 마음도 잃은 피해자들 심정이야 오죽하랴.
연락 줬던 피해자 말로는 지금 그 사기금을 받았던 계좌의 계좌주를 거의 잡을 판이며 피해자들끼리 서로 피해 연대로 모여서 고소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 정도 피해자와 피해 금액이라면 영화처럼 금방 수사망을 좁혀서 범인을 색출해 낼 것 같은데 현실은 그게 아닌가 보다. 하긴 딥페이크로 조작한 영상이 휴대폰에 있는 걸 발견했음에도 그냥 풀려났다는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이 세상에는 우리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여러 추악한 인생들이 있는 것 같다.
피해자도 있고, 피해 금액 증거도 있고, 사기꾼 계좌도 있고, 사기 내용이 담긴 대화창 캡처내용도 있고, 온 세상에 다 깔린 CCTV도 있으니 이제 이 나쁜 놈 잡는 건 시간 문제다 생각하지만, 그 모든 조작된 도시를 뒤져서 실제 범인을 찾기란 영화판보다도 어렵다. 이 일을 겪은 뒤 신랑은 카톡 프로필 사진과 인스타를 모두 공개가 아닌 지인 공개로 바꿨고 자신이 허락한 사람들만 볼 수 있게 설정했다. 업무적인 특성 때문에 오픈해 뒀던 부분이었지만 그 부분을 감수하고 비공개로 돌려둔 것이다. 신랑 휴대폰 번호도 워낙 외우기 쉽고 좋은 번호라 노리는 사람이 많은지 도박, 광고, 이상한 미납 관련 연락들 때문에 여러 불편한 것들이 있지만 그 번호로 계속 사업을 해야하니 계속 버텨내야 한다. 이 조작된 도시에서는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