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제한적으로 주어진 것의 틀을 벗어나고자 꾸준히 노력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시간'과 '생명'이다.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 즉 신의 영역인 것에 의구심을 품은 채 도전하고 연구한다. 그래서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 여행'에 호기심을 갖고, 생명의 끝인 죽음에 이르지 않는 '영생'의 비결을 찾아 헤맨다. 더 나아가 인간 스스로 '생명을 창조'해내기 위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패러다이스>는 수명을 소재로 삼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을 사고팔 수 있게 된 시대에서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혼란과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내가 수명을 기부하면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무조건 내가 하겠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유전자검사를 통해 결과가 맞는 사람끼리만 수명을 주고받을 수 있다. 결국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본인 유전자와 맞는 대상자를 찾게 되면 원하는 수명에 대한 값을 지불한 뒤 자신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가난한 이들은 수명을 써서 늙게 되지만 그만큼 두둑한 경제적 대가를 얻게 된다. 기증자가 원치 않으면 강제로 수명을 빼앗을 순 없다. 영화 상으로 수명 5년 정도면 대학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온다.
영화 도입부에서 나온 난민 가족의 경우, 아들이 자신의 수명 15년을 기부하면 현재 18살인 아들은 33살이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한 경제적 보상을 통해 끝이 안 보이던 난민 생활을 청산하고 시민권을 얻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평생을 노력해도 얻을 수 없던 것들을 아들의 희생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도입부 에피소드를 보고 솔직히 서로 윈윈 하는 전략일 수 있겠다 싶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고 서로에게 없는 것을 주고받는 합법적인 거래라고 여겼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내한테 없는기 니한테 있어야 그게 거래다." 그 거래의 기본 속성에 매우 부합해 보였다. 돈으로도 살 수 없던 수명을 이제 합법적인 대가를 지불해서 살 수 있게 됐고, 돈은 없지만 수명이 있던 이들은 자신이 가진 수명을 돈으로 바꿔 경제적 이득을 누리게 된다는 설정이다.
# 30살 아내가 갑자기 70살 할머니가 된다면?
하지만 주인공 부부의 에피소드가 나오자 내 입장은 단번에 달라졌다. 30대의 주인공 신혼부부는 욕심을 부려 최대치의 대출금으로 무리하게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로 집이 불타버렸고 보험회사는 부부가 부주의로 켜둔 촛불 때문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 설상가상으로 대출을 실행하며 아내는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설정했었고 별일 없을 거라 여겼지만 결국 엄청난 문제가 된다. 은행이 밀린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자 그에 대한 아내의 수명 38년을 강제 집행한다는 것. 돈을 못 갚으면 담보로 잡아둔 집이나 토지, 차가 경매에 넘어가 강제 처분 되듯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했으므로 아내가 하루아침에 38년이나 늙어버리게 된 상황이다.
18살 소년이 33살이 되는 것에는 '그래 인생 시간 좀 스킵했다 치자. 20대가 날아가버리긴 했지만 30대 초반에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그에 대한 합당한 경제적 이익도 봤으니 합리적인 결정이구만.'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평생을 함께 할 것으로 여기며 사랑을 약속하고 2세를 꿈꾸던 30대 부부에게 곧바로 30살에서 70살이 되는 일은 비극처럼 느껴졌다. 더군다나 함께 늙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 중 배우자 한 명만 늙어버린다는 게 끔찍했다.
# 같이 늙어갈 수 없는 저주
신랑과 나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한숨과 놀람이 가득했다. 38년을 혼자 늙어버린 아내를 보며 단순히 예쁜 여자가 할머니가 돼버렸다, 외모적으로 차이가 난다,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었다는 식의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같이 늙어갈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비극적인 저주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한 지인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속상해하던 적이 있다. 연애할 땐 몰랐지만 이제 결혼하고 애를 키우며 나이가 점점 먹어가니 신랑이 여기저기 아프고 체력도 떨어지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지게 되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했다. 건강 이슈야 사람에 따라 나이가 젊더라도 문제가 생기기는 하지만 같이 늙어가는 세월의 속도가 다르다면 또는 상대방이 너무 급격히 늙어간다면 홀로 남겨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쉽고 쓸쓸할 수 있겠다 싶다.
나도 영화를 현실에 대입해 봤다. 지금 내 남편이 갑자기 70살 할아버지가 된다면? 할아버지와 함께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면? 생활습관, 체력, 시간의 한계 등등 여러 가지 제약점들이 떠오른다. 난 지금도 언젠가 이 생을 마감하게 되는 날 우리 부부 중 누구 한 명이 남지 않고 한날한시에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40살 가까이 더 늙은 남편이 나보다 더 빨리 천국에 가버릴 확률이 높다는 것은 너무 뻔해서 생각만 해도 슬퍼졌다.
함께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보고, 서로가 중년으로서의 성숙한 열매를 맺어가는 것을 응원하고, 북적거리던 아이들이 독립한 후 홀가분히 둘만의 여생을 즐기면서, 과거의 추억들을 얘기하며 여기까지 살아내 온 우리를 격려하는 그런 노년이 가장 행복한 부부 라이프의 후반부일 텐데 그 가능성과 희망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다.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해. 그것이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니까.
어디에선가 본 글귀인데 참 좋은 문장이라 휴대폰에 소중히 저장해 뒀다.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다소 평범해 보이고 당연한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인지 곱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불현듯 수명을 사고팔수 없는 현재에 감사했다. 인간이 원하는 만큼 발전하지 못한 현재의 기술 수준에 안도했다. 인간은 늘 금기시되려는 것들에 도전하고 좋은 의도로 탐구하고 발전시키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악조건을 가져오기도 한다. 가끔은 새로운 것들을 개발하고 발굴하는 것보다 당연하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꺼이 함께 늙어가고자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한번 더 안아주고 아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