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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레이첼 Aug 28. 2024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

영화 <어바웃 타임>

[해당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과거의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큰 딸이 나한테 물었다.

"엄마는 과거의 어떤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나는 무심히 바로 대답했다.

"엄마는 딱히 없는데."

"왜? 돌아가신 할머니 있잖아. 엄마도 엄마 만나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대화를 신랑과 한 적이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고 싶은지. 그때 우리 둘의 답은 같았다. 둘 다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굳이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난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다시 돌아가서 살고 싶지는 않아. 나한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고, 늘 베스트야. 과거로는 돌아가기 싫어."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나의 의견도 비슷했다. "모든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던 것 같아. 공부도, 직장생활도, 결혼도, 육아도. 지금 떠올려보면 분명히 아쉬운 게 있을 수 있지만 그 시점에서의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네. 그 결과로 있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니까."


그런데 큰 딸의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대답했다.

"음.. 할머니가 아프시지 않고 건강하게 사셨다면 한 번쯤 다시 보고 싶긴 하지."


예전 글에도 썼던 적이 있는데 난 엄마가 늘 가장 좋은 시점에 생을 마치셨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해서 아픈 엄마를 그 상태로 계속 오래 사시길 바라는 것도 못 할 짓이었고, 엄마 자신도 호스피스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세계 챔피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가족과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누리고 가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했다.


보통 난소암 말기 환자의 생존율이 5년 정도라고 했을 때 엄마는 1년 정도 더 살다가 가신 셈이다. 나였다면 항암이고 수술이고 모두 다 내려놓았을 것 같은데 엄마는 가족들을 위해, 손주들을 위해 이겨내고 버티고 싸웠다. 우리 집 셋째가 태어나서 옹알이하는 것까지 다 보고 가셨으니 엄마로 할머니로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생을 오롯이 살아내셨다. 하지만 엄마의 건강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의 엄마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흐릿하게 해 본다.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결혼 10년 차쯤 되니 내 나이대쯤의 엄마는 과거에 어떻게 살아내셨었는지, 그 고민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물어보고 같이 대화해 보고 싶다. 좀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지만 뭔가 어른 대 어른의 위치로 인생사를 논해 보고 싶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 모든 것도 그냥 스치는 상상에 묻어두기로 했다. 세상은 나비 효과처럼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맞물려있어서 내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게나마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각 시점마다 겪는 고통과 인내, 어려움을 잘 알기에 모든 걸 다시 되돌려서 한번 더 살아낼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 현재의 시간은 과거의 내 행동에 대한 결과


과거로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재도전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인데 나는 이미 한번의 기회를 경험해본 것만으로 분에 넘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3 수능을 마치고 미련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교과서와 공부했던 문제집, 참고서를 정리했다. 혹시나 재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놔둬보자 하는 마음 한 톨 없이 모든 걸 처분했다. 난 나 스스로를 잘 알았다. 이번에 맘에 드는 점수가 안 나왔다고 해서 1년 더 공부한다고 한들 딱히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지 못할 거고, 오히려 늘어나는 시간에서 더 쳐지고 비교하면서 나를 갉아먹을 것이라는 것을. 한번 더 주어지는 기회를 누군가는 잘 활용해서 레벨업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안 하느니만 못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난 후자에 속하는 편이라고 판단했고 애초에 처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마음 먹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 속 주인공 팀은 가문 대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에 자신도 자신이 원하는 어떤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가졌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선 바꾸고 싶던 과거, 실수했던 순간들, 복수하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가 마음껏 즐기고 누린다. 자신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데에도 시간여행 능력을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그의 시간여행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시간을 되돌려서 그 인생을 살 때마다 자신의 원래 아이가 아닌 늘 다른 아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시간여행을 선택하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자녀는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시간을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다고, 좀 잘못돼도 내가 원하는 지점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자신이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제한적이다. 세상의 최고 권력과 돈 앞에서도 시간은 냉정하게 동일하다. 다만 똑같이 주어진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개개인의 선택이고 능력이다. 현재의 시간은 과거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지금 내가 살이 쪘다면 과거의 내가 먹는 양 대비 운동을 적게 해서일 것이다. 현재 돈이 부족하다면 과거에 많은 돈을 썼거나 적은 돈밖에 모을 수 없었겠지. 그런 생각으로 보면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딱히 불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미래의 나를 위해 그럼 난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해 보는 게 더 효율적이다.





#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굳이 돌아가기 싫다는 내 얘기를 들은 지인은 네가 그만큼 노력하며 후회 없이 살았다는 말이라고 추켜세워 격려해 줬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내 입장에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는 건 그만큼 모든 에너지와 노력을 다해 주어진 시간을 썼다는 말과 같다. 이미 최선을 다해 살아낸 시간을 다시 동일한 에너지로 살아갈 자신이 없을 정도로 열심을 다했다는 뜻이다.

적어도 우리 부부가 살아온 시간은 그렇다. 직장에서 매일 야근과 출장과 워크숍에 파묻혔을 때도, 아이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고 수유를 하고 책을 읽어주는 육아 시기에도 늘 각자의 시간에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서로 후회가 없다. 그리고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과거의 나보다 좋은 시간으로 채웠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라 달라진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더해질 노력을 알기에 어쨌든 모든 것을 지나온 지금의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시간은 정직하다. 특히 요즘 아이들에게 성실함의 힘에 대해 설명해 줄 때 더욱 크게 느낀다. 어제는 8살 둘째가 왜 언니만 줄넘기를 잘하고 자기만 못하냐고 억울해하며 엉엉 울었다.

"언니는 네가 놀이터에서 놀 때,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했을 때도 매일 꾸준히 태권도장에 갔어. 거기서 매일 줄넘기 연습을 했고 1년이 지난 지금 줄넘기 자격증까지 따게 된 거야. 언니도 너처럼 처음 시작할 때는 진짜 못 했고 생각만큼 잘 안 돼서 짜증도 많이 냈어. 근데 지금 언니는 각종 줄넘기 기술을 다 알고 잘하잖아. 뭐든 시간이 필요해. 그 시간만큼 매일 꾸준히 조금씩 하면 너도 훨씬 더 잘 해낼 거야. 줄넘기가 안 된다고 짜증만 내면 그냥 그렇게 지금 수준에서 끝인 거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들에게 지금은 영어와 수학보다 피아노, 미술, 태권도, 수영을 가르치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처음에 자기가 잘 못해서 서툴렀던 실력을 알기에 그 시간만큼 꾸준히 차곡차곡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달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마가 옆에서 공부해라, 숙제해라, 지금 해라, 매일 해라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시간의 힘을 알게 되면 훨씬 교육에 적용시키기 효과적이다. 피아노로 도레미를 겨우 치던 아이가 이제는 소나타 곡을 연주하고, 서툰 모습의 태권도 흰띠였던 아이가 고려를 외우며 멋진 품새로 검은띠를 따는 아이가 됐을 때의 그 성취감과 희열.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기까지의 노력을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해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몸소 정직하게 쌓아가며 키울 수 있다.


지금 아이들에게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마 잠만 자는 신생아 때로 가고 싶다거나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유치원 때로 가고 싶다고 할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유치원 때도 하원하면서 오늘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더 놀아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아이도 어른도 늘 뽀로로처럼 노는게 제일 좋다는 것에는 다름이 없다.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어른이 되어서 같은 질문을 받고 나와 신랑의 대답처럼 굳이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과거의 시간들이 너무 싫고 끔찍해서 되돌리기 싫은 게 아니라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에 만족해서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간 성장하기 위해 쌓아온 아이의 노력과 고생을 알고 있는 부모로서 시간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주고 싶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껄무새처럼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매번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뒤돌아볼 것 없이 후회 없이 살아가는 딸들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그런 딸들로 성장시키기 위해 엄마인 내가 더 본을 보여야겠지 싶다. 1년 뒤의 내가 2024년 8월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도록 오늘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성실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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