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점차 그의 의식이 흐려지고 몸의 기능 수치들이 급격히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운 사망 직전에 갔을 때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대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의 정신을 디지털 사후세계로 '업로드' 시킬 것인가?"
아마존 프라임에서 선보이는 드라마 <업로드>는 인간의 사후세계 디지털화를 다룬다. 시즌 3까지 나와 방영 중인데 처음엔 좀 특이한 SF라고 여기며 가볍게 시작했다가 볼수록 심오한 주제도 많고 요즘 같이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중요한 인사이트들이 있어서 남편과 재밌게 정주행 했다. 크고 작은 기술적 이슈들을 블랙 코미디식으로 풀어서 웃어넘겼지만 자세히 보면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수 있는 꽤 심각한 주제들이다. 자율주행, 드론, AI 같은 것들만 해도 이미 우리에게 그리 낯선 단어들이 아니니까.
# 우리 그냥 깔끔하게 천국에서 보자?
늘 그렇듯 우리 부부는 드라마가 끝난 후서로에게 질문했다. 각자 상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돼 업로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편은 별 고민 없이 당연히 업로드하지 않고 내가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라고 했다. 너무 단호해서 내가 좀 당황스러울 만큼 별 미련이 없어 보였다. 영혼육의 일체가 다 있어야 진정한 인간인데 혼에 속하는 정신 그 일부만 디지털 한다는 것도 무의미하고 이미영혼은 천국에 있을 거라며 그냥열심히 현실에서 살다가 깔끔하게 천국에서 보자고 했다.역시 전문경영컨설턴트답게 신속하고 냉정한 판단이었다.
아무리 상상이지만 난 사실 조금 망설였다. 당장 신랑 없는 현실을 생각하니 끔찍하고 자신이 없었다. 혼자서 이 가정을 꾸려가며 나의 남은 생을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상상만으로 괴롭고 무서웠다.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하면 도저히 그를 쉽게 놓을 수가 없어서 당장 업로드 해달라고 신청할 것 같았다. 평소처럼 같이 살 수는 없지만 서로 보고 싶을 때 연락하고 가상현실에서라도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상을 남편이 아닌 돌아가신 엄마로 대입해 보니 종종 엄마랑 대화도 하고 추억도 쌓는 가상현실이 존재한다면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가보고 싶었다.
#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
그런데 한번 더 곱씹어 생각해 보니 오히려 마음 정리가 됐다. 아무리 가상세계에서 만나며 계속 관계를 이어간다고 해도 결국 그 고글을 벗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허무감과 허전함에 더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이미 끝난 인생을 고급 기술과 과학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붙잡아 늘어뜨려 간신히움켜쥐고 있는 느낌이랄까.
암투병 막바지에 엄마가 돌아가시기 3달 전쯤 미리 유언을 남기실 때도 난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기도 싫었고 그런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펑펑 우는 나를 보고 엄마는 덤덤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단다. 그게 주의 은혜다.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엄마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잊혀지고 잊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신의 배려다. 아직도 떠난 누군가를 향해 계속 집착하며 그 슬픔에 머물러있다면 그는 현실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 모습 또한 떠나간 이가 원하는 모습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내가 아직도 엄마의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매일 슬픈 그리움에 짙게 잠겨 있다면 그 누구보다 가장 가슴 아파할 사람은 돌아가신 엄마일 테니까.
# '현실도피'보다 '현실돌파'
드라마 속 주인공인 네이선을 사랑해서 그를 업로드시키는 잉그리드라는 캐릭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결핍이 있어 만족하지 못할 때 더욱 가상세계에 집착해 도피하고 싶어 진다. 마주치기 싫은 현실의 어려움과 복잡함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법들을 선택한다. 게임, 영화, 여행, 친구, 술, 카페, 쇼핑 등등 모두 잠시라도 고된 현실을 잊고 거기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 쾌락과 즐거움으로 위로받고자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정신을 사후세계로 업로드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젠 다시 원하는 육체나 복제인간에게 정신을 내려받는 다운로드 기술까지 등장한다. 결국 사람이 고도화된 기술을 활용해 생명과 죽음, 인생의 문제까지 해결하려 든다. 현실의 문제를 바꿔보려 최대치의 노력을 하지만 나약한 인간인지라 늘 경제적 이득, 권력 싸움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마련이다.
때문에 나는 감히 고퀄리티의 현실도피보다 정통법의 현실돌파가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업로드를 하건 다운로드를 하건 엄청난 기술로 휘감아 노력해도 언젠가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상황과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오히려돌파해 나가는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슬프더라도 그 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나갈 힘을 길러내는 것이 남겨진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예를 들면, 이제 나는 돌아가신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을 더는 먹을 수 없으니 내 아이들에게라도 엄마인 내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을 더 많이 해 먹이려 노력한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배우자에게 매일더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따뜻한 포옹과격려로 채워가는 것 말이다.
그렇게 별것 아닌 듯 차곡차곡 쌓아가며 현실을 돌파해 가는 능력이 그 어떤 과학 기술의 발전보다 놀랍고 가치 있다. 그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그럴싸한 하이퀄리티 현실도피가 더이상 무의미해질지 모르겠다. 사후 영혼을 업로드할지말지 고민하기 보다는 오늘 주어진 하루에 더 최선을 다해 소중히 살아내리라 다시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