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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레이첼 Sep 25. 2024

딸 가진 부모가 본 <무도실무관>

영화 <무도실무관>

[해당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영화인줄 알고 봐도 여전히 끔찍한 소재

 

배우 김우빈을 내세운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에 대해 생각보다 재밌다는 의견들이 많아서 반신반의하는 맘으로 보게 됐다. 전반적으로 나쁜 놈은 맞아야 한다는 마동석식 세계관이 떠오르는 권선징악 교훈을 바탕으로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주인공, 그를 돕는 선한 사람들이 나오는 착한 영화였다.


아주 기막힌 반전이나 놀라운 각본이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액션 타격감도 있고 무엇보다 '무도실무관'과 '보호관찰관'이라는 생소한 직업 자체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특히 딸 셋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끔찍한 장면들이 많아 힘들었다.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우리 부부는 깊은 탄식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난 대부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요즘엔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 이런 장면들이 나와도 되나 싶을 만큼 잔인하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많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영화보다 더 잔인한 현실 범죄를 반영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소개되는 모습들이 있었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납치, 성범죄, 다크웹으로 유통되는 아동성착취물에 대한 내용이었다. 


난 평소 뉴스에 나오는 CCTV 화면이나 실제 영상 자료들 조차 잘 보지 않는다. 스쳐 지나듯 잠깐만 봐도 그 잔상이 너무 많이 남아서 정신적으로 괴롭게 되는 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 안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나오는 피해자가 하필 우리 첫째 아이와 나이가 같은 10세 아이로 나오는 설정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의도치 않게 깊은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전봇대에 묶어둔 강아지로 관심을 끌어 아이를 납치하고 이후 끔찍한 일을 당할뻔한 모든 스토리를 보며 너무 짜증이 나고 구역질이 났다. 무엇보다 이게 단순한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더 심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씁쓸했다.





# 창자가 들끓다는 의미


초등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가 나에게만 말하는 비밀 이야기라며 자신이 겪은 얘기를 해줬다. 말하는 그 친구도 그 얘기를 듣는 나도 그때는 그게 어떤 뜻인지 정확히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성범죄를 당한 친구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그 아이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게 앞에 못 보던 나무 막대기가 놓여 있었다. 기다란 각목의 끝을 뾰족하게 연필심처럼 깎아 만든 무기처럼 생겼었다. 친구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를 괴롭힌 그 아저씨를 만나면 엄마아빠가 이걸로 찔러서 혼내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만들어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십수 년이 지나 내가 가진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 각목을 뾰족하게 깎아 다듬어 문 앞에 분의 심정이 어떠셨을지 감히 상상조차 수 없다.


'창자가 들끓는다'는 표현은 매우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나타낼 때 쓴다. 내장기관 중 하나인 창자가 마치 끓는 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강한 분노와 슬픔으로 몸과 마음이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다.


성범죄나 학교폭력 등 아이에게 가해지는 범죄로 인해 영혼이 파괴됐을 때 가장 괴로운 건 피해 당사자인 아이겠지만, 그 아이의 부모 된 입장에서도 그야말로 창자가 들끓는다는 말 아니 그보다 더한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그 괴로운 심정을 표현해 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도 영화를 보고 난 뒤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전 재산을 다 쓰더라도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법적인 처벌만 기다릴 수 없다, 모든 인맥과 방법을 총 동원해서 가만두지 않겠다, 이 정도면 진짜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 거세를 하더라도 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 아니냐, 전자발찌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혼자 있는 강아지를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알려줘야 한다, 호신술을 배우게 하자 등등 별의별 말이 오갔다. 아무리 만약이라는 조건을 달아 상상해 보더라도 곧 떠올리기도 싫은 상황들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도실무관 같은 이들이 있기에


내가 7살쯤 강가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급류에 휩싸여 물에 떠내려간 적이 있다. 정말 순식간에 물에 빠져서 수면 아래로 몸이 가라앉아 부모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살에 떠밀려 가면서 잠깐씩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 있을 때 필사적으로 살려주세요 외마디를 목청껏 외쳤다. 그때 저 멀리 오두막에서 쉬고 계시던 한 아저씨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주저함 없이 강물로 뛰어들어서 나를 건져주셨다.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자칫하면 그분의 목숨까지 충분히 위험할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분은 물에 빠졌던 나를 부모님께 전해주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물에 뛰어들었던 그 오두막 아저씨처럼,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순간에서도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무도실무관분들처럼.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해내는 현실 히어로들이 있기에 딸 가진 부모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혼자 아무리 재밌는 걸 해도
그것만큼 재밌는 건 없어.
이게 내 심장에서 나온 에너지가
다른 사람 심장에 딱 닿았을 때
나오는 에너지가 있거든.
 그게 제일 행복해.

단순히 재밌어 보여서 무도실무관 일을 시작했던 영화 속 주인공 '정도'가 나중에는 진정한 재미와 행복을 깨달아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떤 삶을 진정 행복한 삶이라 말해줄 수 있을지 돌아보게 됐다.


내 자녀가 무도실무관처럼 눈에 보이는 처우는 부족하고 목숨마저 담보로 걸어야 하지만 자신의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이를 돕는 인생을 선택했을 때. 너는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며 기꺼이 응원해 줄 줄 아는 용감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네가 그걸 해야 하냐고 말릴 수 밖에 없는 부모가 될지도 모르겠다. 육아 10년차라고 꽤나 부모로서의 경륜이 쌓인 것처럼 오만방자했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가볍게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를 보다가 부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깊이 고뇌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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