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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쓴 원고가 책 공모에 당선되기까지

아이 셋 40대 엄마가 에세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던 이유

by 퍼플레이첼


# "야, 나 이거 진짜 꼭 되고 싶어."

20년 지기 친구와 여느 날처럼 시시콜콜 카톡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가 툭 인스타 캡처 이미지를 보냈다. 그리곤 자기가 계속 눈여겨본 에세이 공개 모집이 있는데 출품한 게 꼭꼭꼭 당첨됐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워낙에 글솜씨도 좋고 특유의 유머 감각에 블로그와 작가로 꾸준한 경력을 쌓아오면서 소위 글빨이 있던 친구라 별 걱정 없이 넌 무조건 당선될 거라고 장담했다. 평소에 딱히 크게 바라는 것 없는 잔잔한 친구인데 오랜만에 절실한 무언갈 찾은 것 같은 모습에 문득 내 호기심도 발동했다. 카톡에 온 이미지 속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검색했다.


<챗지피티 시대의 고민 상담>을 주제로 한 에세이 공개 모집이었다. 챗지피티와의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간단한 3편의 에세이를 작성하면 되는 거였다. 지원자 중 10명 정도를 선정해 공동 저자로 책을 출간하는 프로젝트. 인스타그램의 주인은 이미 책을 여러 권 출간해 보셨던 노련한 편집자님이셨고 직접 에세이 공개 모집을 시작한 당사자였다.


글을 쓴다, 에세이를 쓴다, 책을 낸다라고 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서 시작도 하기 전에 어깨가 무거워질 텐데. 무엇에 홀렸는지 분량도 주제도 한번 덤벼볼 만하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여럿의 작품을 모아 출간한다는 취지도 서로 부담을 나눠갖는 구조라서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진입장벽이 낮게 느껴졌다.


그 무렵 챗GPT에 대한 주제로 한참 남편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다양한 인사이트들이 오갔었는데 그런 생각들을 그냥 흩어버리는 게 아까웠다.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을 모아 글로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었다. 워낙 자발적으로 하지 못하는 성격이니 이런 공개모집 지원을 통해서라도 반강제적으로 챗GPT에 대한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기길 자처했다. 선정 여부와 상관없이 내 글을 완성시켜 줄 좋은 도구이자 기회라고 생각했다.


# 시작하기까지 좀 느려서 그렇지, 하면 또 열심히 하는

나 같은 부류는 생각이 많고 행동이 느려서 실행력은 매우 취약하지만, 본인이 해야겠다는 마음의 세팅이 완료되면 낯설 정도로 놀라운 추진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시작하기까지가 좀 오래 걸리고 느려서 그렇지 하면 또 뚝딱뚝딱 열심히 하는 애, 그거다.


이번 에세이 참여가 딱 그랬다. 혼자 가벼운 마음으로 되든 말든 그냥 해보자는 생각이 세팅되니 다음 단계가 쉬웠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글감들과 생각들을 휘잡아 글을 써 내려갔다. 아이들을 보내고 하원하기 전까지의 한정된 시간을 활용해 신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제한적인 상황일 때 인간은 숨겨진 힘을 사용한다.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공부할 때도 그렇고, 이번처럼 마감 기한을 얼마 안 남기고 글을 완성해야만 하는 경우도 그렇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여기에 출품 안 한다고 해서 벌금 내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선택한 걸 매듭짓고 싶었다.


아이들의 하교, 하원시간을 알람으로 맞춰두고 초집중 모드로 글을 써 내려갔다. 무언가에 확 빠져서 결과물을 도출해 낸 과정이 참 오랜만이었다. 괴로웠지만 마치고 나니 개운했다. 이틀 만에 세 꼭지의 단편 글이 나왔다. 일반적인 에세이의 분량에는 당연히 한참 못 미치는 짧은 글이지만 모집에 지원할 수 있는 분량과 구성은 갖췄다. 초고 제목은 고심 끝에 <눈치 보지 않는 밤>으로 정했다. (비록 실제 책에서는 통일성을 위해 빠졌지만)


다 써놓고 보니 너무 구구절절 구질구질한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에세이 인지 혼자 쓰는 일기인지 퀄리티도 좀 걱정되고, 괜히 한다고 설쳤나 살짝 후회도 들었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뒤로하고 아 몰라 를 외치며 접수 메일을 보냈다. 발표가 언제인지도 까먹고 또 정신없이 매일 쏟아지는 아이 셋 육아와 집안일에 매몰돼 있을 무렵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야, 너 내가 저번에 낸다던 에세이 모집에 글 냈어?"

톡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뜩 들어 인스타로 들어가 결과 발표글을 찾았다. 선정자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의 이름도 있었다. 친구는 내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인가 싶었지만 뭔가 이상한 촉이 와서 연락을 한 거다. 떨어질 것 같아서 친구에게도 딱히 말하지 않았었는데 우리 둘 다 선정자 명단에 올랐다니 신기하고 짜릿했다. 20년 지기 우정과 실력이 함께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쓸모 있다

이틀 만에 쓴 원고가 책 공모에 당선되기까지는 브런치의 역할이 컸다. 민망하게도 최근 브런치 연재가 한참 멈춰있었지만 (사실 유튜브 제작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새로운 세계에서 열심히 도전 중이다.) 작년 7월부터 대략 6개월간 집중적으로 55개의 글을 발행하면서 글 쓰는 근육이 확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브런치를 통한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모집글을 보고 이틀 만에 에세이를 완성해 신청한다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했다. 내가 뭐라고 감히 그럴 깜냥이 안될 것을 알고 있기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내고 몸을 베베 꼬며 약속된 연재일마다 한 편의 글을 써내는 브런치 연재의 고통을 넘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짧은 글이라도 써볼 수 있겠다고 여겼으리라. 브런치 연재라는 눈물의 골짜기를 힘겹게 건너와 올해는 공저자로 첫 책을 출간해 보는 이 놀라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쓸모 있다고 본다.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가 기회인 줄도 모르고 흘려보내는 일이 부지기수다. 브런치 연재를 통해 준비되고 있는 줄은 몰랐지만 아주 좋은 훈련의 기간임을 지나고 나니 알게 됐다. 브런치가 선사해 준 이 소중한 첫 작가 데뷔 무대를 누군가는 코웃음 칠 수 있지만 나 스스로는 나를 기특하게 여겨 칭찬한다.


그리고 이 글을 빌려, 예전의 나처럼 브런치 연재를 꾸역꾸역 해대며 '아니 이게 뭐라고, 누가 억지로 하라고 했냐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브런치를 시작했냐' 궁시렁 거리는 브런치 작가분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지금 메마른 골짜기만 잘 견디고 넘는다면, 오아시스 같이 반짝이고 시원한 기회를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브런치 속에 숨겨진 예비 에세이 작가님들!

오늘 마주한 깊은 연재의 골짜기도 뚝심 있게 뚜벅뚜벅 건너시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 다음 글에서는 제 글이 실제로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볼게요. 나름 '책 공모 당선 후 공저 출간 체험기'가 될것 같습니다.


* 도서 <챗지피티 시대의 고민 상담> 정보 및 주요 온라인 서점 판매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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