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 주소 알려주세요. 저 좀 들어가게요.
요즘 큰 아이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대일 영어를 배운다.
학원으로 오가는 시간과 에너지도 줄이고 선생님과 둘이서만 집중해서 수업을 하니 집중도가 높아 만족 중이다. 다만 수업 준비나 온라인 연결은 아직 내가 도와줘야 한다.
첫째의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 간식을 챙기며 분주하게 아이방과 거실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는 내내 둘째가 계속 말을 삐딱하게 하는 게 들렸지만 몇 번이고 참고 넘겼다. 거슬리지만 거슬리지 않는 것처럼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우선은 선생님과 약속된 시간에 수업이 시작되도록 세팅을 마쳐야 하니까 거기에만 집중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걸 확인한 뒤 아이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나름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눈치 없이 둘째가 계속 비꼬듯 말했다. 사실 둘째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솔직히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류의 예의 없는 말투와 내용, 태도였던 것 같다. 아마도 엄청 불쾌한 기억이라 반강제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삭제해버렸나 보다.
암튼,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 내 옆에서 끊임없이 눈치 없이 나불대는 둘째를 보자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이를 불러 세우고는 결국 봉인해 둔 화를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 지금 다시 말해봐.
엄마한테 뭐라고 했어?
엄마가 니 친구야?
어른한테 누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
아이가 답할 새도 없이 눈을 부라리며 으다다 몰아붙이며 언성을 높여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둘째는 늘 그렇듯 입을 꾹 닫고 큰 눈만 껌뻑 거리며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꽉꽉 눌러뒀던 화를 있는 힘껏 다 들이붓고는 얼른 들어가서 샤워하라고 쏘아붙이고서 씁쓸한 기분으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한참 뒤 수업을 마친 큰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곤 충격적인 말을 했다.
"엄마, 00이 혼냈어? 엄마 소리 지르는 거 안에서 수업하는데 다 들렸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짜 등에서 식은땀이 흘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가서 숨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좀 참을걸. 눈 질끈 감고 한 번만 참을걸. 바로 화내지 말고 경고부터 좀 할걸. 아오 민망해.
그때 당시엔 수업하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도 완전히 까먹었다. 그야말로 눈이 돌았었나 보다.
아니, 설마 그 방 안에까지 내 소리가 들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겠지. 아니면 나도 내 목소리를 컨트롤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와 화가 폭발했었나.
그냥 큰소리가 났다는 정도가 아니라 꽤나 구체적인 내 목소리가 들렸나 보다. 선생님 보기가 너무 민망할 정도였다.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는 법.
원래 아파트 화장실이 제일 방음이 안되니 아이들 혼내기 전엔 화장실 문부터 꽉꽉 닫아야 한다고 엄마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나의 그런 처절한 육아의 민낯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육아만큼 나를 잘 드러내기 좋은 것이 없다. 육아를 하며 아이도 크지만 미숙한 엄마도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내 밑바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도저히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게 바로 육아다.
나보다 최소 30년 이상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혼자 열받고 화내고 혼내고 어찌나 치사하게 구는지. 그냥 좀 져주고 그냥 좀 이해해 주고 그냥 좀 어른처럼 품어주면 어때서. 왜 그거 하나 넘기지 못하고 하나하나 따지게 되는 걸까.
물론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주된 양육자로서 가르쳐야 할 것은 반드시 가르치고 짚어줘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좀 더 사랑으로 품어주는 멋진 어른과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내 아이를 옆집 아이 키우듯 키우는 게 좋다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이번에도 이렇게 내 육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들켜버렸으니 말이다.
나의 못생긴 육아 민낯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기한 것은 대부분 나보다 아이가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아이를 혼내고 난 뒤 엄마인 나는 씁쓸, 자책, 열받음, 민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아직 추스르며 씩씩 대거나 이다음에는 아이한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이는 나에게 혼남을 듣고 샤워를 마친 뒤 아무렇지도 않게 와서 말한다.
엄마 머리 묶어 주세요.
엄마 이거 인형 옷 다시 입혀주세요.
엄마 오늘 저녁 뭐예요?
내 못난 육아의 쌩얼을 보고도 아이들은 그래도 엄마가 엄마라서 좋다고 말한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한 전문가의 말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누가 나를 그렇게 혼나면 무섭고 서럽고 짜증 나서라도 더 말 걸기 싫을 텐데 아이들이 순수해서 그런지 정말 엄마를 사랑해서 그런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고맙다.
가끔 나도 혼내고 나서 한풀 씩씩거림이 잦아지면 내가 먼저 가서 아이에게 아까는 이러이러했고 엄마가 너무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늘 아이가 먼저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오늘도 미숙한 엄마는 어린아이에게 배운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완벽한 엄마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혼내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는 엄마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