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레이첼 Dec 20. 2024

둥지 떠날 준비를 시작하는 딸에게

사춘기는 믿음과 기다림의 연속

# 네가 사춘기면 나는 갱년기다?


요새는 보통 빠른 아이 기준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특히 여자 아이의 경우 몸의 변화나 감정의 기복이 더 심할 수 있다고 하던데. 당장 우리 첫째는 내년부터 사춘기의 출발점에 한 발 놓게 된다.


나와 신랑은 각자 사춘기를 크게 힘들게 겪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양가 부모님들의 생각은 다르실 수 있지만) 평소보다 좀 예민하게 구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요즘에도 큰 아이는 가끔 이유 모를 이상한 상태로 나에게 째려보는 세모눈을 뜨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짜증을 내기도 하며, 혼자 씩씩 거리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한동안 안 나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도 당연히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지만 아이의 그런 상태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 '스스로 호르몬과 분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라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화를 다스렸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더 봐줄 수 없는 심한 삐딱선을 탄다면, 나는 나의 갱년기를 들이대며 결국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 맘으로 혼쭐을 내주며 따끔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엄마가 너무 좋은데 엄마를 너무 벗어나보고 싶어


그런데 며칠 전 자라다남아미술연구소 최민준 원장님의 유튜브를 보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11살에 접어든 아들을 훈육할 때 사춘기에 맞서는 갱년기로, 호르몬 vs 호르몬으로 가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그 시기가 되면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즉, 엄마가 너무 좋지만 엄마를 너무 벗어나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드는 상태이기 때문에 네가 사춘기면 나도 갱년기다라는 식으로 강압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자기 전에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주고 사랑한다는 굿나잇 인사를 하는 딸이 나를 벗어나고 싶다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 그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하긴 항상 엄마랑 같이,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다가도 어느샌가 스스로 옷을 고르고 혼자서 요리도 직접 해보고 싶고 친구들이랑 학원에 오가고 싶다는 모습이 보였던 게 그런 작은 신호들이었나 보다.


하물며 수학문제를 풀 때 모르는 걸 알려준답시고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하면 자기가 혼자 풀어볼 기회를 좀 달라고 외쳐대던 아이의 강력한 외침도 아마 그런 홀로서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


10년에 걸쳐 정신없이 세 아이 육아를 해오면서 잠시 잊었는데 결국 이 고된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다. 내가 보호자로서 아이들에게 지금 제공해 주는 모든 서비스(?)를 아이 혼자 할 수 있도록 자립하게 돕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사명이다.


기본적인 청소, 빨래, 식사를 비롯해 공부, 책임, 인간관계, 생활습관, 돈관리 등등 모든 것을 나의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고 그에 관한 선택에서 자신이 결정한 결과를 책임지는 어른으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지금은 부모라는 둥지 안에서 안전하게 있지만 평생 이 둥지에서 살 수는 없고 살아서도 안된다. 반드시 이 둥지를 떠나 자신만의 둥지를 짓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그 당연한 사실을 알지만 묘하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이건 마치 단유 하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없이 모유수유만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단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는 잘 받아들이고 쿨하게 돌아서지만 엄마인 나만 허전하고 헛헛한 심정일 때가 떠올랐다.



# 엄마는 너 믿어


처음 신랑을 가족들에게 소개하던 날 엄마는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신랑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셨다. 과묵하게 있던 아빠에게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냐고 하시니 네가 데려온 사람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 골랐을까 라며 답하시던 아빠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시는구나 하고 혼자 크게 감동했다.


부모님이 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존감과 자신감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그리고 그럴수록 부모님에 대한 신뢰도 함께 커진다.


나도 내 딸에게 엄마는 너 믿어, 그러니까 한번 해봐, 기다릴게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딸에게 때론 섣부르고 조급한 마음이 생겨 말이나 행동이 먼저 나가서 설레발치는 실수를 하기도 하겠지만 차차 엄마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빠져주고 믿어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믿음과 기다림의 연속으로 채워질 사춘기 시기를 지혜롭게 넘겨서 둥지 떠날 준비를 시작하는 딸에게 든든한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