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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May 28. 2024

제5화. 나는 누구인가요?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15.


한적한 주말, 방 안에만 처박혀 하루종일 핸드폰으로 드라마나 보길 몇 시간째였다.

방 안에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핸드폰에서 나오는 불빛과 펀칭된 커튼사이로 방 안을 염탐하듯 조심스럽게 뻗친 빛줄기, 그리고 요새 또 말썽인 허리를 지지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전기 매트 조작기의 온도와 시간을 표시하는 빨간 점등이 다였다.


"수니야 눈 나빠져. 방 안에 불이라도 켜놓고 봐. 아님 나와서 거실에서 보든지."


 하루종일 방 안에서 나올 생각도 없는 내가 미울 법도 한데 다정한 희야씨는 내 눈걱정에 방 안에 불을 켜고 나가려다 다시 들어온다.


"애랑 좀 나가서 편의점 갔다가 산책이나 하려고 하는데 같이 나갈래?"


"아니 난 안나갈래."


고온으로 뜨겁게 등을 지지다 참다못해 높은 베개하나 무릎 사이에 낀 채 옆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리곤 남편이 방 안 가득 훤히 켠 불에 눈이 부셔 빛이 스며들 만큼 얇은 여름 스프레드로 얼굴과 손에 든 핸드폰을 텐트마냥 덮었다.


"맛있는 커피 사줄게. 같이 나가자."


그러나 내 의견을 물어보려고 말한 건 아닌 건지 침대 곁으로 다가와 뻐근한 나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주무르며 말하는 남편.


얼마 전부터 작은 긴장감에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통과 오심, 그리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에 8개월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가 끊었던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과 처방이 있었다. 정말 작은 스트레스에도 혼절할 것 같은 기분에 다시 집 안에만 있는 나에게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내 기분 상할까 봐 예쁘게도 말하는 희야씨 말에 못 이기는 척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따라나선다.


편의점에 들렀다가 각자 손에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사브작사브작 근처 공원을 거닌다. 막상 나와보니 5월 특유의 시원하고 쌀쌀하면서도 또 그늘 밖으로 나가면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희야씨는 자기가 애를 볼 테니 흔들 그네에 앉아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를 멀찍이 데려간다. 난 그 흔들 그네에 앉아 앞꿈치와 뒤꿈치를 번갈아 바닥에 찧으며 그네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리다 눈부신 햇살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부들부들한 롱원피스가 끝나는 발목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치마 안으로 들어오며 치마 안 공기를 환기시키듯 바람이 그네의 움직임에 따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치마가 가득 바람을 품을 때는 호박처럼 치마가 부웅-하고 부풀었다가 후~하고 바람을 내보낼 땐 치마가 날 미라로 만들 셈인지  다리를 쫘악 감싸며 달라붙어 민망했다. 공원 안 놀이터에 우리만 있는데도 괜스레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볼세라 달라붙은 치마를 손으로 잡아 뜯어 올린다.

그렇게 눈을 감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데 내 뒤에서 남편과 놀고 있는 아이의 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나무 막대기를 하나 주워와 철봉이며 실로폰 모양의 놀이기구를 탕탕 치며 연주하듯 노는 소리도 들렸다. 아빠에게 자기 좀 보라며 소리치는 소리, 남편이 장난치며 우다다다 쫓아가는 소리, 아빠가 쫓아가자 무서워서 도망치면서도 꺄아 소리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따라 나오길 잘했네 싶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두었다. 마침 남편이 쉬면서 들으라고 내 귀에 꽂아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Bruno Mars의 It will rain도 흘러나온다. 이 노래를 들으면 꼭 15년 전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유유자적하며 맨발로 해변을 거닐던 때가 떠올라 좋았다.


이렇게 모든 게 완벽한데 문득 3년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약을 먹게 되었다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살짝 울컥함이 밀려왔다. 나만 제자리인 느낌.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 기분. 분명 너무 행복한데 갑자기 두 눈 가득 뜨겁게 눈물이 그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눈 가득 찬 눈물을 어깨로 찍어 누르니 어깨 부분 티셔츠에 눈물자국이 꾸욱 묻어 나왔다. 기분 좋게 나와서 청승 떨지 말자. 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자. 하며 감은 눈을 뜨자 놀이터 바닥에 쫙 깔린 파란색 우레탄칩이 보였다. 그 위에 따스한 햇살을 등에 업은 채 열심히 죽은 쥐며느리 사채를 옮기고 있는 개미 몇 마리도.



'저런 개미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일주일에 픽스된 스케줄이라고는 브런치스토리에 월요일 연재, 화요일 연재, 목요일 어반스케치 수업 밖에는 없는데 그것마저 긴장되고 걱정되고 그래서 일주일에 사흘을 두통으로 누워있고... 진짜 왜 벗어나질 못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도 쓰고 싶고, 그림도 부지런히 그려서 나만의 그림체도 만들고 싶고, 명상 유튜브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이 놈팽이같은 몸이 당최 적응이 안된다.


난 파워 J에 엄청난 추진력이 있던 사람인데 삼 년째 갈팡질팡 방황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도대체 난 누구니..



혹시 밤사이 잘라 아무 데나 올려놓은 내 손발톱 먹고 변신한 쥐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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