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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May 21. 2024

제4화. 마음속 칼날, 그리고 칼춤

다른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

13.


 우울감을 느껴 본 사람은 본인 스스로가 느끼겠지만, 약간의 억하심정이 생긴다. 그게 마음의 그릇이 좁아진 게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전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인데..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행동이 눈엣 가시처럼 보이거나 그 행동이 굉장히 거슬리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를 못 하는 것을 떠나 혐오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약간 쌈닭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가시가 꼭 다른 사람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가시의 방향은 그 누구라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나를 향해 날을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등 자신을 향해 쿡쿡 찌르기도 한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을지라도. 그저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가시는 칼날이 되어 윤활제가 잘 먹인 기계처럼 내 마음속에서 쉬이 가동되어 사방으로 그 칼날을 휘둘러댄다.


 내 경우 인생의 큰 배움이 있었는데 마음이 아프기 전에도 조금은 예민했던 성정이라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넘어 증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나보다 3달 먼저 입사한 남자 직원이 친해지자며 주말에 식사나 한 끼 하자길래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좋은 사람 같다며 만나보자고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그 직원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도 했고 누굴 만날만한 마음적 여유가 없어서 거절했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얘기에도 미안하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이 직원이 그날 이후 계속 나에게 기분 나쁜 티를 냈다. 업무적으로 얽혔을 때도 업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짜증을 나한테 부린다든지 미묘하게 신경전을 걸어올 때가 있었다. 업무적으로 얽힐 일이 많아 밝게 웃으면서 업무적으로 협조 요청하면 " 귀여운 척?"이런 식으로 공사 구분 없이 태클을 걸어왔다. 그렇게 6개월을 일하다 이 사람 때문에 그만두겠다 싶어서 그 직원 상사분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아직도 나의 인생 명언이기도 한데 그 남자 상사분은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그 사람과의 일을 곱씹는 건 선 칼로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과 같아. 나는 화가 나고 짜증 나고 분해 죽겠는데 그게 다라는 얘기야. 정작 그 사람은 자기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는지 하루종일 신경 쓰이고 거슬리는지 모른다? 그 사람은 하루종일 평온한데 나는 하루종일 그 사람이 하는 미운 짓을 되뇌고 상기시키면서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는지, 상황, 말투까지 생각하며 쟤가 얼마나 꼴 보기 싫은지를 계속 생각해. 그리고 그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놔. 미워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 칼날이 얼마나 날카롭겠어. 내 마음은 그 사람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고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은데, 그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고 평온하면, 그 미워하는 마음은 누굴 해치는 일인지를 생각해야 해. 그런 사람은 내가 굳이 신경 써가며 미워하지 않아도 그런 그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 눈에도 좋게 보이지 않을 거고 그건 다 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어있어. 애써 시간을 써가며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 그게 너 자신을 위한 일이야."


 이 말은 내가 그날 이후 누군가가 싫고 미워질 때마다 상기시키며 내 마음을 다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이후로는 내 감정자체가 통제되지 않아서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이 만들어낸 칼날에 걸레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내 안에 흐르는 것이 결국 나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 딱 마음먹고 끊고자 하는 힘이 생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 두 달 동안 난 포털사이트의 온갖 글과 댓글, 그리고 뉴스거리를 섭렵했었는데, 사실 그 일이 나를 더 처지고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요즘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도, 맘카페를 들어가도,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어가도 온갖 정치 갈라 치기, 성별 갈라 치기가 난무하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조장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맘카페를 들어가 보면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제목이 이거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라는 제목. 이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누군가나 누군가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내용이다. 이런 글들은 대부분, 시댁, 남편, 아이친구엄마, 지인 등과 있던 일을 얘기하면서 흉보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그 글들을 쓸 때 과연 평온한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아니다. 정말 흥분된 상태에서 부정적인 마음을 듬뿍 담아 씩씩대면서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체적인 사실 또는 내용과 온갖 나쁜 감정이 뒤섞인 글을 보며 그 기분 나쁜 감정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깨달았다. 내 일도 아닌데 이렇게 나까지 흥분되고 기분 나쁠 일인가? 그건 엄연히 쟤일이지. 내일이 아니잖아. 이 글을 읽는 내가 굳이 쟤를 위해 감정의 쓰레기통을 자처해야 할 일인가? 왜 얼굴도 모르는 이 사람이 쓰는 글에 왜 선동되어서 날이 선 칼날을 나를 향해 들어야 하는가? 그 생각이 든 이후 나는 맘카페, 뉴스, 포털 사이트 글을 끊었다. 뉴스도 정치적인 싸움이라든지 요새 워낙 흉흉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일들이 많아 같이 끊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아는 것보다 내가 잘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 행동은 실제로 내가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을 끊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흘러넘치는 부정적 뉴스, 글들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면 그 사실들로부터 나를 떨어뜨리면 될 일이었다.





14.


 나는 마음에도 체력이 있다고 믿는데 우울증이 있다고 하면 다들 나가서 운동을 하라거나 자신만을 위한 취미를 만들기를 권유하지만 그것을 이행할 만한 신체적 체력과 심적 체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이여도 내 안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내 주변에 후드득 떨어지고 만나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는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행할 수 없는. 팩트는 '하지 않는'이 아닌 '할 수 없는'이다

.

 앞 서 말한 것처럼 마음의 체력이 올라오는 데는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의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야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두 달 동안 나는 남편이 퇴근하여 오기 전까지 하루종일 내 밥도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송장처럼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었다. 당연히 남편과 아이의 밥도 챙기지 못했다. 밥을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생각하지 말아야 할 생각들이 자의와 상관없이 수시로 떠올랐기 때문에 차라리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자는 편이 나았으니까. 이제 와서 하는 말이라며 남편은 회사 갈 때 나를 차에 같이 태워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혼자 두기에 불안해 보였다고 했다.


 그래도 그 두 달이 나에게 헛되지 않았는지 나를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취미로 독서, 글쓰기,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배우며 허튼 생각이 밀려들어오지 않게 뭔가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 갔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사생대회에서 상을 휩쓸곤 했고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어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 나 미대 가고 싶어." 하지만 그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너 하나 그림 가르치려면 우리 집 팔아야 해. 그냥 공부해." 였다.


엄마는 이 말이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치고 후회되는 말이라고 한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데 그냥 시켜줄걸.'하고. 특히나 날 닮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제법 표현력이 좋은 내 딸을 볼 때마다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는 집 근처 행정복지센터에서 연필 스케치며 어반 스케치며 닥치는 대로 배웠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 흔히 영혼을 갈아 넣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밀하게 작업하는 과정에서 예민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보다 와 해냈다 하는 성취감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처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취미는 독서였다. 결혼 후 육아하랴 일하랴 집안일하랴 일 년에 책 한 권 읽기도 빠듯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머리를 비울 수 있지만 기분 좋은 상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라이트한 소설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어디 눈 많이 오고 사람 인적 드문 별장 같은 곳에서.. 아무 방해도 안받고 한 두 달 책에 파묻혀 아무 걱정 없이 미친 듯이 책만 읽고 싶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열중해서 그림 그리고 난 뒤에는 집 근처 서점에 사서 내가 맘에 드는 소설을 고르는 재미부터 사서 모으는 재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요즘은 무슨 책 읽냐고 물어볼 정도로 그렇게 나의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그림 그리기와 독서라는 두 종류의 취미는 공통점이 있었다. 진행하는 과정에서 몰두하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과 끝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기존에 업무에서 느끼던 성취감을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책을 읽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림의 결과와 책의 결말을 통해 느낄 수 있었기에 나에 대한 자존감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삶의 의욕이 올라가 나의 멘탈을 관리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어느 때는 '남편은 힘들게 밖에서 벌어오는데 아내라는 사람은 집에서 팔자 좋게 그림이나 그리고 책이나 보고 있네. 식충이처럼.' 하며 스스로를 폄하하고 갉아먹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내가 능력이 출중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네가 이런 걱정 없이 더 편안하게 너를 치료해 나갈 텐데. 네가 아픈 것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미안해."


라고. 정말 시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남편은 그 누구보다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기에 더 이상 남편이 말도 안 되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착한 남자가 내 남편이라니. 인생의 동반자를 떠나 아마 이 남자가 내 곁에 없었다면 난 지금 없지 않았을까. 이 남자가 나에게 큰 믿음을 주고 전적으로 나를 지지해준것에 꼭 보답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능력을 키워 누구보다 맘고생했을 우리 착한 남편 제대로 호강시켜 줘야지 하는 열정이 생겼다. 그리곤 더 이상 무기력하게 침대에서 누워서 시간을 허비하는 시간은 없어졌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신명나게 춰대던 칼날의 춤을 멈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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