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경과에서 단순 우울증 약을 받아먹을 때만 해도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오고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 조심스럽게 남편이 우리 부모님에게 말하자 순식간에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야? 응? 네가 왜야? 네가 뭣이 부족해서?"
마치 자식이 엄청난 병에 걸리고 만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병이 오래가면서 약 부작용으로 몸도 퉁퉁 붓고 힘들어하자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 단단히 먹어. 네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애도 키우고 하지. 약을 끊어야 해. 약에 의존하면 못 써."
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겨내려고 해 봐. 방안퉁수마냥 집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운동 좀 하고."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이 단단치 못해서 또는 이겨내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 상태에 머무는 것처럼 이제 기운 내야지 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쉬이 건넨다.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해도 부모가 너한테 쓴소리도 못하냐고 부모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고 하는 소리라며 하는 그런 말들. 부모님은 걱정되셔서 하시는 말이겠지만 마치 내가 이겨낼 생각이 없어서 그 상태에 머무르며 주변 사람들을 같이 갉아먹고 힘들게 하는 사람인마냥 말하는 것 같아서 '이제 가족들 생각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약 끊어야지. 언제까지 약에 의존할래.'라는 그 말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나는 약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약 덕분에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속 편하게 주변사람들까지 눈치 보게 만들면서 예민하게 구는 예민덩어리 취급하는 것 같아서 그 말들이 너무 불편했다. 내가 이겨내길 바라면서 하는 그 소리가 전혀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그런 말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굳이 굳이 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못 참아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참된 진심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참견'이란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마음이 아프기 전에 나는 밤늦게까지 또는 새벽 넘어서까지 선적체크를 해달라는 영업부의 요청에 '그래,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감당할 거야.' 하며 견뎠다. 퇴근 후에 결혼한 여자한테 왜 이렇게 전화하냐며 화물 스페이스가 없는 걸 네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퇴근한 사람한테 시간 단위로 전화해서 쪼냐며 싫어하는 내색을 비치는 남편을 달래며 그렇게 내 업무에 충실하려고도 노력했다. 연말 해외 공항 백로그 문제로 선적이 진행되지 않아서 모든 화물의 선적이 진행되지 않을 땐, '네가 책임져라. 네가 당장 독일 가서 물건 가져와라.'며 말도 안 되는 말로 압박하는 영업부 상사의 말에도 꿋꿋하게 내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려고 무단히도 애썼다. 내가 업무를 하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들은 모를 테지만. 그 모든 걸 견딜 만큼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바사삭 금이 간 이후로는 단디 붙잡고 있으려 해도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았다. 옛날에는 10을 견딜 수 있었다면 지금은 3을 받아도 마치 한도 5짜리에 15만큼의 하중을 받는 것처럼 왜 이렇게 모든 일이 무겁고 큰 일처럼 다가오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건지.
마음이라는 것이 심장, 간과 같은 하나의 장기라면, 이건 마음 경화가 틀림없었다.
70프로는 경화가 되어 제 기능을 할 수 없고 30프로의 장기만으로 모든 스트레스를 해독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굳어버려 내 뜻처럼 다스릴 수 없는 느낌. 30프로의 기능으로 살아가면서 각종 약물을 통해 경화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며 적응하며 사려고 하는데 정신만 차리면 낫는다니. 주변 사람들 그만 지치게 하고 너도 나으려고 노오력을 하라니. 심근경색, 간경화 환자에게는 하지 않는 말이 아닌가. 우울증 또한 보이지 않는 장기의 질환이라는 점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했을 당시는 사람들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나의 증상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측은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 물어봤다.
"괜찮아?" "잘 지내?" "요즘은 어때?" "약은 계속 먹고?"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인사에 할 대답이 없었다. 난 정말로 괜찮지가 않았고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는 중인데 인사치레로 물어보는 그 가벼운 안부인사에 무겁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요즘은 좋다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전혀 괜찮지가 않는데 괜찮다고 둘러대는 것이 너무 힘에 부쳤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심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웠고 그렇게 사람들을 기피하기도 했다. 경화된 마음으로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 버린 것일까. 이게 가벼운 안부 하나하나까지 이렇게 힘에 부칠 일인 줄은 아프기 전까진 전혀 몰랐다.
나의 마음의 병을 오픈하자 실은 자기도 병원에 다닌다며 마음의 병을 오픈하는 주변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마 내가 아파보지 않았다면 나도 저들처럼 괜찮냐. 잘 지내냐. 힘내라. 이겨내라.라는 어쭙잖은 형식적인 위로를 건네며 실은 그들의 마음을 한 손 가득 움켜쥐며 짓누르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워 입을 열기보단 귀를 열어주었다.
"앞으로 만나도 마음이 편해졌냐고 묻지 않을게. 혹시나 편해지면 그때 먼저 얘기만 해줘."가 되었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도 "잘 지냈어?" 대신 "어우,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가운데?" "머리 많이 길렀네?" "어쩜 그대로야?" 하며 개인적으로 딥하지 않은 것들을 안부로 묻게 되었다. 혹시나 카톡으로 먼저 오랜만에 연락할 일이 생겨도 "오랜만에 연락하네. 생각나서 한 번 연락해 봤어."가 되었다.
나의 가벼운 인사치레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12.
"신경 안정제를 처방해 드릴 거예요. 이 약은 수니씨가 세상을 받아들일 때 모든 가시 안테나를 세우고 받아들였다면 그 가시를 무디게 조금은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약이에요. 세상에 대해 좀 더 편히 받아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약이에요. 대신 이 약을 드시고는 수니씨가 몰두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취미들을 고민해 보도록 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 어릴 때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것, 아니면 요즘 흥미가 생기는 그 어떤 것들이라도 좋아요. 앞으로는 같이 찾아나가는 시간들을 갖기로 해요."
이 첫 상담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나는 취미를 찾지 못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아이의 하원시간이 될 때까지 내 끼니를 챙기기도 어려울 만큼 그렇게 멍하니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있다 겨우 여러 번의 알람소리 끝에 시간이 되면 데리고 오곤 했다. 바쁘게 살아온 탓에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남편이 일을 나가고 아이가 집을 비운 그 시간들을 뭘로 채워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난 30여 년이 넘는 인생 동안 늘 넘쳐나는 잡생각들로 머리가 한 시도 쉰 적이 없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미리 걱정하느라, 앞으로의 계획을 꾸리느라, 인정받기 위해 해야 하는 업무를 끝마치느라, 가정에서는 육아를 하느라, 집안일을 하느라 그랬다. 특히 남들보다 유독 인정욕구가 높은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쁨 받고자 극 내향적인 성격에도 밖에 나가면 밝고 상냥하고 모두에게 배려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싹싹하게 웃으면서도 모든 걸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늘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성취감을 느끼고 마음이 편안한 사람인데 내가 고심 끝에 찾은 취미라고는 쓰잘데기 없이 혼자 방 안에 처박혀 소설책 읽기와 행정복지센터에서 그림 배우고 집에서 몇 시간 동안 그림이나 끄적거리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신선놀음 흉내 내는 한량 같았다. 생산성 없이 소비만 하고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밥이나 축내는 것 같은 죄책감에 이게 맞나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 나를 상담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생산성이라는 게 과연 돈 버는 일만 생산성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 힘들어하는 집안일을 해내고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양육을 하며 그 힘들다는 육아를 해내고 좋은 아이로 키워 사회에 훌륭한 인재를 만들어 보내는 게 과연 인생을 허무하게 소비하는 삶일까요? 수니씨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꼭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아이의 온 우주인 수니씨 존재 그 자체로 생산성 있는 삶이에요. 수니씨가 없는데 아이가 있을까요? 수니씨가 있어야 그다음에 남편이 있고, 아이도 있는 거지 수니씨가 없으면 그게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살아있는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으니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취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BTS를 생각해 보세요. 본인들이 좋아하는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걸로 전 세계가 열광하고 온 세상이 그들의 이름을 외쳐요. 아마 돈도 무지막지하게 벌었겠죠. 그들은 수니씨가 말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죠?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노래와 춤으로 세상을 뒤흔들죠. 옛날 어른들은 집에서 기타 치고 춤추면 공부 안 하고 논다고 베짱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들은 그렇게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더한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을 거예요. 근데 BTS는 어쨌든 그들이 좋아하는 걸로 세상을 휘어잡았잖아요.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세요. 여태 남들 시선 의식하느라 쏟았던 그 열정들을 이젠 책 읽는데 쓰고, 글 쓰는데 쓰고, 그림 그리는 데 쓰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에 열정을 쏟아봐요. 누가 알아요? 수니씨가 유명한 작가가 될지, 아님 대형 전시회를 여는 화가가 될지. 설령 그것이 경제적으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남에게 내 열정을 쏟는 게 아닌 나 스스로에게 열정을 쏟아붓는 인생을 사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난 이 말에 퍽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도 정말 그런 재능이 있을까? 그 말에 설레기도 했었다. 그래서 진료실을 나오기 전, 의사 선생님이 농담 삼아 "어디 가서 내가 BTS 베짱이라고 했다고 말하시면 안 돼요!" 한 그 말에 귀를 덮은 채 여기에 이렇게 적어본다.
내일 예약발행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브런치 입문한 지 얼마 안되어 할 줄 몰라 이렇게하루 일찍 연재하게 되었네요.ㅎ 저의 실수를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