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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수니 Jun 18. 2024

제7화. 나는 삐뚤어진 F가 되기로 했다.

타인을 배려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어린 시절 나의 생활기록부에 늘 나오던 단골 멘트들.


혹시 내가 이기적이고, 타인의 눈치를 덜 보았다면, 남의 감정보다 나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프지 않지 않았을까.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전상사가 떠오르면서 든 생각. 타 부서 팀장들과 동등한 직급임에도 굽신거리고 눈치 보느라 정작 정당한 우리의 권리는 못 챙겨주는 와중에 우리 성과도 다 자기가 가로채고 자기 잇속은 악착같이 챙기던 상사. 할 줄 아는 일이라곤 하나 없으면서 아랫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해도 자존심만 세서 자기 말이 맞다고 박박 우겨 결국 아랫사람들 일을 두세 번 하게 하는.

우리는 더러 그 상사를 '희대의 ×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혹시 내 몸 구석구석 나를 위해 일을 하는 세포들이 나를 보고 딱 저런 생각을 지 않았을까. 동등한 인격을 가진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몸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발버둥 치는데도 내 마음 편하고자 묵인한 채 달려와 결국 '못 버티겠다, 들고 일어서자' 하며 나를 '희대의 x년'이라 부르며 반란을 일으킨 건 아닌지. 그래서 내 마음대로 못하게 마음을 망가뜨려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2를 보기 위해 얼마 전 인사이드 아웃 1을 보면서 생각했다. 37년 간 내 안의 기쁨이가 의식적으로 취한 선한 것들로 채워진 가짜 자아로 살진 않았는지. 내 안의 슬픔, 불안한 기억,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난 기억은 기쁨이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장기 기억소로 다 유배당하고 기쁨이의 병적 해피모드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던 건 아닌지.


하지만 내 안에 양한 감정이들의 반란은 일어났다. 기쁨이가 의식적으로 만든 가짜 자아는 반란군에 의해 뽑혔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진짜 자아를 찾아야 한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정당한 기대권'에 부응하기 위해 저버린 진짜 나를 찾기 위해.


37년 만에 찾아온 나의 사춘기.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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