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한문시간, 불혹이라는 말을 배웠다.
불혹(不惑) :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 뜻.
사춘기 각종 호르몬의 대향연으로 여드름이 폭발하며 감수성이 최고조에 달할 그 시절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미혹되지 아니함이라.. 나이 40엔 나도 저런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불혹이라니. 너무 멋있는 말이다.'라며 나도 그런 지조 있고 자신만의 강단 있는 참어른이 된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불혹을 앞둔 나는 사람들의 아무 의미 없는 말에도 이리 일렁이고 저리 일렁이는 촛불마냥 일렁이다 겨우 정신 차리고 불길을 지켜내는 양초 위의 외로운 촛불이다. 싫어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내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피하기만 하는 속수무책의 예비 불혹.
중학생 그 당시엔 생일케이크 위 색색이 꽂혀있던 초의 촛불이었다면 지금은 엄지 손가락 굵기정도 되는 양초 위 촛불 같달까.
내 안에 곧은 심지(心志)로 나를 지켜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작은 날숨 하나에 끝끝내 검게 타버린 심지만을 남겨둔 채 꺼질 듯 애처로운 그런 나를 그리던 건 아니었다.
공자는 어떤 확신으로 불혹이라는 말을 내뱉었을까.
어린 시절 곧잘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나의 좌우명은 '나잇값 하며 곱게 나이 든 어른이 되어야지.'였다. 그런데 불혹을 앞둔 나는 반대로 어른애가 되었다. 내가 막 거창하게 공자처럼 성인(聖人)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나잇값 하는 성인(成人)이 되고 싶었을 뿐.
나잇값 하는 어른. 그게 참 버겁다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