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휴직서와 사직서를 던진 지 반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몇십장의 이력서와 몇 번의 면접과 몇 번의 합격이 있었지만 도저히 타협 불가능한 이유로 여전히 구직 시장을 기웃거리는 중입니다. 아직은 퇴사를 후회하진 않지만, 글쎄요, 조만간 전 회사 대표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직서 반려해달라고 매달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휴직할 때만 해도 이직이야 쉬울 줄 알았습니다. 한 군데 붙었다 철야와 출장이 많은 걸 뒤늦게 알고 거절한 상태였거든요. 여기저기 이력서 넣으면 전 회사와의 악연도 쉽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휴직 후, 한 달 동안 둘째 새 어린이집 적응과 이사를 마치고,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며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6년 전과는 회신 빈도가 사뭇 다릅니다. 나이가 문제일까요,엄마인 게 문제일까요, 아님 둘 다일까요?
그러다 휴직한 지 3개월쯤 되던 때, 면접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좀 외진 곳이었거든요. 여태까지 못구한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해-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시내의 직장을 찾아서였는데, 시간 상으로는 거의 서울 출퇴근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인 데다, 대우도 좋아 '그래, 일단 가보자!'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운전 시작한 지 3개월 된 초보라 한 시간을 헤매 겨우 업체 사옥에 도착했습니다. 회의실로 저를 안내한 인사담당자는 인상이 좋아 보였습니다.
"미씨가 저희가 검토한 이력서 중에 제일 반응이 좋아서요."
설계팀은 한 명뿐이고, 외주를 주던 업무를 맡아서 할 직원을 뽑는터라 인수인계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전 작업물 좀 볼 수 있을까요?"
다행히 이전 회사에서 하던 작업과 같은 내용의 시안 작업이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 관리도 해야 하는데, 그건 간단하니까요."
그 정도야,뭐, 가능하죠.
"R 프로그램 다룰 줄 아세요?"
"전 회사에서 썼었는데 5년 전이라서.. 써보면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럼, 금방 되겠네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이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데 왜 이직하시나요?"
"제가 아이들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직장으로 옮겼으면 해서요."
갑자기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인사담당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습니다.
"아, 그래요? 몇 살인가요?"
"4살, 5살입니다."
"아이고, 힘들 텐데.. 부모님이 맡아주지 않으세요?"
"멀리 계시고, 직장이 있으셔서요. 바로 등하원 도우미 구할 예정입니다. 전 회사에서도 썼었고요."
"그래도 밤새고 그러면 어려울 텐데..."
"야근이 많나요?"
"아뇨, 그래도 성수기 때는 좀 있어요."
야근이 많다는 건지, 적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두리뭉실한 대답. 그 기간 때문에 취업문턱에서 밀려나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두 시간 면접의 반 이상을 제 아이들 안위 걱정으로 채웠습니다. 며칠 후에 준다던 연락은 없었고... 그렇게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세 달 뒤, 위커넥트에서 주최한 '회사 분석 레시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위커넥트'는 '임팩트커리어'와 협력하여 24일까지 소셜벤처의 경력단절 여성 공동채용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답이 없는 현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해서 성수동까지 달려가 보았습니다.
총 4명의 엄마가 모여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육아에 치이고, 취업의 벽에 치여 지쳐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경력을 가진 인력이 필요한 소셜벤처와, 경력은 가졌지만 나서지 못하는 엄마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생겼다는 점일까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임팩트 체인을 분석해서 본인이 가진 역량과 결합점을 찾아내는 방법을 배운 수업이었습니다. 어제 한 기업에 지원을 해 보았고요.
말로만 듣던 경단녀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핑계도 대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와 엄마, 가족 모두가 행복한 결론이 어딘가엔 있겠지요. 그걸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계획입니다.